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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명국 원광학원 이사장 | ||
120년 전, 갑오년 농민들은 ‘참다 참다 못해’ 일어서 삼정문란으로 대표되는 세제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당시는 수취체제의 문란으로 인해 농민들을 담세능력의 한계상황으로 내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년 농사지어서 세금내고 나면 식구들의 생계조차 불가능한 상태가 이들의 현실이었다. 그해 6월, 농민들은 호남의 수부였던 전주성을 점령하고 세금문제를 비롯한 폐정개혁을 위하여 농민권력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하고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1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세금문제에 대한 우려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는 우리사회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전체의 파멸을 경고하고 있다. 120년 전의 세제 문제가 제도 문란에 의한 불법적인 수탈이 핵심이었다면, 오늘의 세금문제는 부의 집중 현상과 소득불균형으로 인한 경제활동의 위축과 상대적 박탈감의 문제이다.
1998년 월가의 1%에 대한 시위나 노동자들이 소득격차에 대한 불만으로 인한 시위는 결코 남의 일만이 아니며 또한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다방면에서 입증되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의 소장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론』에서 지난 300년 간 주요국가의 조세자료를 분석한 결과, 각국의 소득불균형은 점차 심화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세계 자본주의의 파국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가 총자산에 대한 누진세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즉 소득 상위계층에 대한 높은 과세정책으로 소득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케티의 이러한 주장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최근 몇 달 사이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이 세계 주요국가나 한국경제의 소득불균형에 관한 비관적인 보고서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들 보고서에 의하면 1990년부터 2010년까지 20년 간 한국의 소득불균형 정도는 아시아 28개국 가운데 5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에 소득불균형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의 증가 추이는 중국이 가장 빨랐고, 인도네시아, 라오스, 스리랑카에 이어 한국이었다. 이는 1981∼2007년의 8번째였던 것과 비교하면 불균형이 더욱 심화된 것이다.
피케티의 분석에 의하면, 이러한 소득불균형의 핵심요인은 생산수익률(1.6%)이 자본수익률(4~5%)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땀 흘려 일해서 번 소득보다 금융소득의 생산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최고소득계층(상위1%)은 소득의 1/2 정도가 상속자본에 의한 소득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피케티의 경고는 2차 대전 이후 칼 폴라니가 현대자본주의의 불안정 요인으로 지적한 바 있는 노동과 화폐, 그리고 토지의 상품화를 비판하며 시장주의에 반대했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경제적 행위가 금전적 유인에 의한 것이 아닌 사회적 행위의 부차적인 속성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본과 시장이 아니라 인간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경고하였다.
공교롭게도 갑오년인 올해에, 소득 불평등 구조의 심화는 결국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국내외적인 경고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지난주에는 OECD가 OECD국가 평균의 3배가 넘는 49%에 이르는 한국의 노인 빈곤율 해소를 비롯한 한국경제 현안에 대한 권고를 한 바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제기되고 있는 ‘사람이 먼저’인 사회로 돌아가기 위해서도 경제민주화는 우리사회의 최대 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