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운영 '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 이상직 국회의원·전주 완산을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한다.”

 

제주로 가던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는 가슴 아픈 일들을 연이어 겪고 있다. 있을 수 없는 대참사로 기록된 세월호 침몰사고는 희생된 실종자의 수색이 두 달 가까이 진행형이다. 여기에 지난주에는 강원도 고성지역 22사단 최전방 GOP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해 젊은 장병들이 희생됐다. 이 안타까운 죽음 앞에 우리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다만 일련의 사건들을 그냥 단순 사실(fact)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골든타임(golden time)’이다.

 

모든 일에는 유효한 시기가 있어

 

그동안 세월호 사고 관련 뉴스를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배의 최초 사고 시점으로부터 침몰할 때까지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한 탑승객들에게 탈출하라는 지시를 어느 누구도 내리지 않았는지에 대해 궁금하게 여겼다. 배에 이상이 발생한 때부터 침몰할 때까지 무려 1시간, 더구나 침몰 당시 해경이 현장에 도착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함으로 인해 어린 학생들이 “해경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보고도 그대로 가라앉아야만 했던 야만스러운 광경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22사단 총기사고도 그렇다. 5명의 장병이 희생됐다. 그러나 이들은 최초 총격을 받은 직후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1시간 이상, 두 시간 가까이 아무런 응급조치를 받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됐다고 한다. 희생 장병의 가족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시신이 총을 맞고 웅크린 채로 있었다는 뉴스 인터뷰를 보면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월호와 22사단 GOP 총기사고 모두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상식적인 응급조치’를 못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결국 참사로 이어졌다.

 

이처럼 모든 일에는 유효한 시기가 있다. 우리 사회의 복잡 다양한 문제들 가운데 정치 현실 역시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세월호 사고를 겪으면서 국정지지도가 추락했고, 급기야 정홍원 국무총리가 정부의 무능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안대희,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가 연달아 자진사퇴하면서 대통령은 바꾸기로 했던 국무총리를 다시 유임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이 자꾸 발목을 잡아서 “못해먹겠다”는 불만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부의 무능에 대해 책임을 지고 갈아치우기로 했던 총리를 다시 재활용하는 건 무책임한 궤변이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사실상 총리를 경질하고, 해경과 소방 119까지 해체한다고 했지 않았던가. 결국 현장에서 일하는 조직에게는 책임을 묻고, 최고책임자들에게는 면죄부를 준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상식적인 대응조치’라고 하기 힘들다.

 

더구나 청와대는 헌정사상 초유의 ‘국무총리 재활용’에 대한 이유로 국정공백을 막고 경제 재도약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경제와 거리가 먼 검사출신의 ‘책임(지고 물러 날) 총리’를 다시 ‘재활용’하는 것은 논리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정운영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정부 '재활용 총리' 골드타임 허비

 

만일 국민화합과 경제 재도약을 위해서라면 대통령의 인사수첩을 그냥 덮을 게 아니라, 능력 있는 호남출신 인물들에게도 문호를 열어줬어야 한다. 재활용을 할지언정 호남출신 총리는 중용하지 않겠다면 ‘대탕평’의 골든타임은 이미 지난 셈이다.

 

지금 우리는 골든타임을 놓치면 참사로 이어진다는 뼈아픈 경험을 충분히 하고 있지 않은가. 청와대는 야당의 반대 이전에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상식적인 인사’를 했어야 옳다. 청와대로 행진하는 국민들의 분노에 대해 눈과 귀를 막고, 이렇게 ‘재활용 총리’를 내세워 국정운영의 골든타임을 허비할 일이 아니다.

 

△이상직 의원은 민주통합당 원내부대표를 지냈으며,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직능위원회 수석부의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