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총리와 홍명보 감독

   
▲ 위병기 서울본부 정치부장
 

우리 사회의 위기는 한마디로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치적이 있을 때 “내가 했다”는 사람은 많지만, 비판받을 일이 있을 때 ‘내잘못’이라며 석고대죄를 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더욱이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주어진 막중한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있어야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것을 보기 힘들다.

 

브라질 월드컵 8강전을 앞두고, 축구팬들은 한편으론 가슴이 설레고, 다른 한편으론 한숨만 나오는 상황을 겪고있다. 한국 축구가 최악의 성적을 거뒀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결국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는 3일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의 유임을 공식 발표했다.

 

홍명보 호는 이번 월드컵에서 1무 2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뒀을 뿐 아니라, ‘월드컵 본선에 나오면 안 될팀’이라는 쓴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승패를 떠나 투지와 열정, 기량과 전략의 부재 등 대한민국의 위상을 단단히 떨어뜨렸으나, 대한축구협회장이나 부회장, 전무는 말할 것도 없고, 홍명보 감독도 우물쭈물 유임됐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일본과 이란은 감독이 자진해서 사퇴했고, 이탈리아의 경우 축구협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난 것과 비교된다.

 

감독은 사표를 제출하고 축구협회장은 간곡히 부탁해서 유임시키는 상황은 정홍원 국무총리 유임 때와 너무나 비슷하다. 일부 축구인들이 국정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로부터 혹시 자리보전을 위해 살아남는 법을 보고 배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얼마 전,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한 뼈아픈 칼럼 하나가 실린 적이 있다. 방송인이자 작가인 메리 데제브스키는 칼럼에서 ”서방국가에서는 국가적 비극에 이렇게 늑장대응을 하고도 신용과 지위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는 국가지도자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던 정홍원 총리를 60일 만에 사의를 반려하고 유임시켰다. 안대희, 문창극의 낙마로 인해 국정 난맥상이 장기화하고, 국론분열과 후임자 찾기에 어려움이 많았음을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총체적 책임을 지고 사퇴한 총리를 유임시킨 것은 우리 사회의 도덕기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홍원 총리 혼자 죽을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책임지고 물러나는 상징성 조차 없는 상황이다. 시선을 도내 국회의원들의 행태로 돌려보자. 최근 도내 국회의원 11명 가운데 과반 이상이 보좌진을 교체했거나 보좌관이나 비서관을 공모한 것은 상징성이 크다. 충실한 상임위 활동 준비가 보좌진 교체의 이유라고는 하지만, 실은 지방선거 패배 이후 조직정비를 위한 몸부림이다. 국회의원들의 공천잘못으로 지방선거에 패배하고도 힘없는 보좌관, 비서관에게 책임을 묻는 형국이다.

 

지난 4년간 도내에서는 지도자의 상황 판단 잘못이나 논리부족으로 지역발전에 큰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단체장은 자신의 최측근들이 결정적인 비리에 연루돼도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버텨왔다.

 

이제 막 새 민선자치 4년이 시작됐다. 중책을 맡게된 단체장들이 앞으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지고 나설지 지켜보자.

 

정홍원 총리나 홍명보 감독의 유임에 대해서는 핏발을 세우면서도 자치단체장의 무능과 무책임을 용인하는 한 지역의 발전은 요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