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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성벽 기초석으로 추정되는 10여개의 돌무더기가 옛 남원역 인근 우수저류시설 공사 현장에서 발견됐다. | ||
옛 남원역 인근에서 ‘남원성벽의 기초석’으로 추정되는 돌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남원성을 연구하는 한 시민이 최근 옛 남원역 인근에서 향교지구 우수저류시설 설치공사 중 10여개의 남원성 돌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고 본보에 알려왔다.
현장을 확인한 결과 해당 돌은 남아있는 남원성 북쪽 성벽돌과 유사한 형태를 보였다.
문제는 현재 방치 상태인 이 돌이 남원성벽의 기초석이라 하더라도 보존 및 활용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1597년 8월) 때 가장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을 복원하는 계획이 예산 및 관심 부족으로 사실상 추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남원성을 연구하는 시민들은 “돌의 크기와 형태 등으로 미뤄 남원성 북쪽 성벽의 기초석이 분명하다. 일제가 남원역을 만들고자 북쪽 성벽을 무너뜨려 남원성의 기능을 상실하게 한 후, 남원성 전체를 파괴하는 명분으로 삼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우리 선조들이 죽음으로 지켰던 남원성의 복원을 위해 이 돌은 반드시 보존 및 활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원시는 취재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뒤 전문기관에 조사를 의뢰한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일단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 문화재발굴 전문기관에 조사를 의뢰해 남원성 북쪽 성벽돌인지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라며 “조사결과에 따라 이 돌에 대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향토사학자인 한병옥 씨 등 남원성을 연구하는 시민들은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 때 전라 병사 이복남 장군 등 1만여명의 성민 대부분이 북문에서 순국했다. 당시 북문 옆 큰 구덩이에 시신들을 모아 함께 묻어 만인의 의로운 무덤인 ‘만인의총’을 만들었다”면서 “일제시대 당시 남원성 북문 자리에 왜 전라선 남원역(1931년 10월 중순 전주∼남원 구간 개통)이 건립됐는지, 왜 북문 인근인 남원역사와 만인의총 사이를 플랫폼과 철로로 갈랐는지, 왜 90도 이상의 급커브 등 공사하기 어려운 지점에 남원역사가 세워졌는지 등은 풀리지 않은 과제”라며 이 문제에 대한 규명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