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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10·13유족회에서 1972년 1월에 만든 기록물을 보여주고 있는 김태옥 씨. | ||
“43년 동안 말없이 지냈다. 벌초라도 제때 해줬으면 좋겠다.”
남원시와 한국철도공사 전북본부가 함파우 유원지 개발계획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남원 수학여행참사 추모지(1971년 11월30일 조성)’에 대한 정비를 시작했다.
이 소식을 접한 한 유족이 최근 본보를 찾아 그동안의 심경을 털어놓으며 추모지 정비에 관심을 이끌어준 전북일보에 거듭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남원10·13유족회’의 총무를 맡고 있는 김태옥(77·남원시 조산동) 씨는 “세월호 침몰사고를 보면서 1971년 10월13일의 아픔이 다시 떠올랐다. 귀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심정,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며 당시의 상황을 회고했다.
“(나는) 1971년 10월13일 아침 남원역으로 달려갔다. 남원국민학교 학생들이 탄 수학여행 열차가 남원역에서 1.5㎞ 지점 고갯길에서 제동장치 고장으로 후진하는 바람에 뒤에 있던 유조화물열차와 충돌했다는 것이다.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딸(故 김은숙)은 보이지 않았다. 남원역과 병원을 오가며 2시간 가량을 헤맸다. 결국 딸 아이는 뒤늦게 객차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 때 사고로 남원국민학교 학생 16명과 통학하던 전주공고생 3명 등 19명이 숨지고 27명은 중상, 20여명은 경상을 입었다. 19명의 유족들은 아픈 마음을 서로 달래기 위해 1972년 1월31일에 ‘10·13유족회’를 만들었고, 유족회는 매년 10월13일에 모인다. 모임에 앞서 벌초를 하면서 43년을 보냈다.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고 지원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 유족들은 남원시의 개발계획에 따라 묘지 이장을 고민해야 했고, 2기는 이미 다른 곳으로 이장했다. 유족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남원시와 한국철도공사가 관리를 실시해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19명이던 유족회원들은 이제 8∼10명으로 감소했다. 김 씨는 “43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유족들도 사망하는 등 그렇게 잊혀져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전북일보가 43년동안 묻혀있던 남원 수학여행참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켜, 추모지에 대한 정비가 시작됐다”면서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한 수학여행 참사가 되풀이 되는 것을 보면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씨는 다시는 이 같은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우리사회에 당부하기도 했다.
한편 본보는 1971년 10월13일에 발생한 열차사고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지(남원시 노암동 산8-11번지 유원지 내)가 남원시의 관광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는 지적과 함께 추모지의 정비를 주문했다. 이에 남원시와 한국철도공사 전북본부는 지난 6월18일 주변 수목 벌채, 벌초, 진입로 정비 등을 실시한 뒤 헌화 및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시는 이번 1차 정비를 시작으로 함파우유원지 내 연결도로(소리명상길, 생명의 노래길)와 연계해 추모지에 이르는 진입로 및 휴게시설을 조성하는 등 정비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