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려도 괜찮아, 부드러워도 괜찮아

실패를 거울삼아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가치 창출

▲ 송은정 전주 대정초 교사
모든 물건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실패를 딛고 우연에서부터 기지개를 펴, 더 큰 감동을 주는 물건들도 있다. 1968년, 3M사의 연구원 스펜서 실버는 기존의 접착제들보다 강력한 물질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접착력은 좋지만 쉽게 떨어져 버리는 물질이 탄생한 것이다. 낙담에 빠진 그에게 직장동료 아트 프라이는 접착제를 바른 종이 상품을 제안한다. 아트 프라이는 주말마다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성가대였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찬송가 쪽수를 찾아야 해서 종이를 한가득 끼워두었는데, 찬송가를 펼치면 종이가 쏟아져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종이가 쏟아지지 않게 하려고 풀을 붙여두면 찬송가의 얇은 페이지들이 찢어져 버리곤 했다.

 

그래서 잘 붙지만 깨끗하게 떨어지는 종이를 판매하자는 아트 프라이의 착안 덕분에, 드디어 1981년부터 포스트잇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포스트잇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활의 편리를 제공하고 있다. 조금 전 일도 깜박깜박하는 나에게도 포스트잇은 없어서는 안 될 친구이다. 사실 포스트잇 말고도 내 주변에는 수많은 메모들이 여기저기 남겨진다. 스마트폰에, 몰스킨 노트에, 바탕화면 메모장 파일에. 메모들은 내 흔적이 닿는 곳마다 살아있어서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갖가지 일들을 나 대신 기억해준다. 하지만 필요한 순간마다 바로바로 찾아 쓸 수 있는 편리함에는 아직도 포스트잇을 따라갈 자가 없다.

 

크기별로 색색별로 구분된 포스트잇들은 복잡한 세상일들을 잘 알아볼 수 있게 도와준다. 심지어 어떨 때는 붙어있는 위치만으로도 여러 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때로는 벽에 한가득 붙어있는 포스트잇들을 보며 나만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세상에 감탄하기도 한다. 포스트잇에 뭔가를 적는 동안에는 생각이 정리되고 상상력마저 튀어나오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때로는 내가 왜 적지 않고서는 하루라도 마음 놓고 살 수 없게 된 것인지 한탄이 나오기도 한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메모가 된 것 같아 부쩍 심통이 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물 먹은 담요처럼 기분이 내려앉을 때에도, 작고 귀여운 포스트잇 뭉치를 보면 다시 한 번 새로운 무언가를 적고 싶은 마음마저 드는 것이다. 이렇듯 포스트잇은 늘 내 곁에 있어주는 고맙고 깜찍한 친구이다.

 

포스트잇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드라마틱한 이야기마저도 감탄과 함께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실패한 줄만 알았던 작품이 발상의 전환으로 새롭게 가치를 얻은 이 사례는, 창의적 사고와 유연한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일깨워준다. 그리고 실패에 좌절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우연이 필연으로 바뀔 수 있음을 알려주어, 잠시 넘어진 청춘들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준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 ‘틀려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도 준다.

 

또한, 다른 종이들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도 스스로 붙었다 떼어졌다 하며 유연하게 전체의 의사소통을 돕는 모습은 사회에 첫발을 디딘 초년생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더운 날씨에 울컥하여 맥주집을 향하고 싶을 때마다 포스트잇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유쾌하게 웃어 보는 건 어떨까? 붙였다가 언제든지 뗄 수 있으니 틀려도 괜찮다고, 부드럽게 살아도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