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제도적 장치에 의거 원칙을 지키고자했던 사관들이 희생을 당한 경우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조선시대 연산군(燕山君) 4년(1498년)에 많은 사림이 희생을 당한 조선시대 4대 사화(士禍) 중 하나인 무오사화(戊午士禍)이다.
이렇듯 우리 선조들은 역사를 중요시 하고 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였으며 그리고 그 임무를 맡은 사관들은 자기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였다.
이러한 제도와 죽음도 불사한 사관들의 사명감에 힘입어 조선 초대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에 걸쳐 472년간 조선왕조의 역사적 사실을 연월일 순에 따라 조선시대의 정치·외교·군사·문화·산업·사상·윤리 등 각 분야를 두루 망라하여 기록함으로써 오늘날 조선시대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귀중한 자료로서 활용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역사적 기록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정확한 역사기록을 위해서는 제도도 중요하지만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조선시대 사관들이 정확한 기록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면 조선왕조실록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목숨을 바치는 것을 두려워했다면 아마 탄생은 했지만 그저 그런 역사기록물이 되었을 것이고, 진실성과 신빙성이 높아야만 등재될 수 있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사관들이 죽음도 불사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에 대한 투철한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난 4월 우리사회를 비탄에 빠지게 만든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온 국민이 슬퍼하고 분노했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국화꽃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 것은 배가 침몰하는 순간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장과 승무원들은 먼저 도망가 버리고“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충실히 따른 승객들은 모두 차가운 바닷속에 희생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온갖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뒤범벅되어 발생한 사건으로 이후 모두들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내려고 사회적 노력은 하고 있으나 벌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지난 사건에서 우리 모두가 배우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 맡은 바 직분에 맞는 윤리의식과 책임감의 행사라고 본다. 조선시대의 사관처럼 죽을 각오로 매사에 책임감 있게 임한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을 향해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국화꽃을 들고 눈물을 흘렸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희망차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각자 맡은 분야에서 자기 본분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