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가 급속도로 진행 중이던 파리에서의 보들레르는 목적론적인 행위에 집착하는 성급한 군중들과는 대조적으로 도시를 응시하면서 그들 사이를 유유히 거니는 사람들을 지칭해 플라뇌르(Flanuer, 산책하는 사람)라고 했다. 최근 도시의 문화공간이 늘어나고 산책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경쟁과 성장의 속도에 모두가 지쳤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 청년보”는 중국에서 스트레스와 과로로 돌연사한 인구가 60만명에 이르면서 만만디의 대국 중국이 과로사 1위 국가가 되었다고 발표했다. 중국인 10명 중 1명꼴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영국 한 의학 잡지의 조사 결과는 더욱 끔직했다. 1억 이상의 인구가 늘 뭔가에 쫓기듯 초조하고 불안한 우울증 증세를 겪고 있는 것이다. 고도성장과 함께 풍요가 급속도로 유입되고, 성장의 그늘이 산만큼 높아지고 있는 중국의 모습은 대한민국이 현재 겪고 있는 모습 그대로이다. 2013년 영국의 신경제재단이 세계 151개국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와 기대수명, 환경오염 지표 등을 평가해 산출한 국가별행복지수(HIP)를 보면 1위 코스타리카, 2위 베트남, 3위 자메이카, 4위 벨리즈 순이었고, 한국이 60위, 덴마크가 93위, 미국이 104위 순으로 나타났다. 국민소득과 행복의 양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이다.
대부분의 부유한 국가에서는 끼니를 때우고,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에서 지내며,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을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경제성장과 함께 행복이 증대되던 시대는 이미 끝나버렸다.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 선진국일수록 장기화될 소지가 있는 부정적 사회문제가 많이 일어났고, 국민 스스로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2013년도 기준 국내 1인당 GDP가 2만5000달러에 다다랐지만,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지수가 더 이상 높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빈곤이 해결된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사회가 충분히 부유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남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의 위치가 불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성장(소득)이 행복을 증가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적 비교와 습관화에 있다. 경제성장 이전에 비해 국내 국민소득이 200배 이상 증가했지만, 우리는 돈 때문에 괴롭다고 한숨을 쉰다. 타인의 소득 증가가 나의 행복을 감소시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치는 경쟁의 바다(레드오션)를 표류하며 속도와 성과를 숭배하는 종족이 되어 버렸다.
지금, 대한민국은 속도와 경쟁에 지쳤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목표는 효율성이나 성과가 아니라 다수의 행복추구이다. 행복이 중요한 이유는 삶에 대한 동기를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람이 많아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지금은 한 사람의 행복이 아닌 다수의 행복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성취와 불안의 쳇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회가 추구할 공동의 목표가 필요하다. 평등이 해답이다. 다른 사람이 더 많이 가질수록 내가 더 불행해지는 현상은 탄탈로스의 갈증과 다름없어 한계가 없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공헌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을 기를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그 갈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연일 불볕더위가 지속되는 8월이다. 어느 때보다 속도에서 벗어난 한가로움이 필요한 때이다. 잠시 멈춰 주변을 바랄 볼 여유조차 없는 삶이라면,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대도시일수록 시민들이 한가롭게 걸으며 삶을 관조할 수 있는 빈 공간이 필요하다. 수목이 우거진 산책로가 있고, 그 도시만의 독특한 내적 세계가 있는 문화공간이 그립다. 그곳이야말로 사회의 누적된 피로를 치유할 수 있는 행복한 공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