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대회 출제 의도로 본 현대사회와 인간

올해로 9회째인 2014 전북 중·고생 논술대회가 지난달 26일 전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 마무리됐다. 전북일보사가 주최하고 전북중등논술교육연구회가 주관한 이번 대회에는 약 600명의 전북지역 중·고교생들이 참가해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겨뤘다. 이에 대회를 주관한 전북중등논술교육연구회 임창범 회장(전북외고 교사)으로부터 출제의도를 들어본다.

 

■ 2014 전북 중·고생 논술대회 고등부 제시문

 

〈제시문 가〉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회에서는 소유냐 존재냐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소유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 존재의 유일한 근거는 소유이며,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무존재’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가 인간의 사회, 인간이 살 만한 사회일까?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실존양식을 ‘소유’와 ‘존재’의 두 가지로 구분하고 그 두 양식의 분석을 통해 현대 사회가 삶의 방식에 제기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은 소유에 집착하는 삶의 양식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런 소유적 삶의 양식에서는 ‘살아있는’ 관계가 없다. 소유의 삶에서 인간이 사물과 맺는 관계는 오직 점유관계이거나 지배의 관계이며,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지배적이고 기본적인 요소는 경쟁과 반목이다.

 

이 소유양식의 반대편에 ‘존재의 양식’이 있다. 인간은 소유에 집착하고 그것에 안주하려는 욕망을 버릴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삶 자체를, 곧 살아 있는 관계를 배려하는 것이다. 프롬은 인간이 지구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억제하도록 요청받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인간의 삶이 소유 양식의 우위로부터 존재 양식으로의 근본적인 전환이 이루어져야만 파국으로부터 구제될 수 있다고 그는 역설한다. 새로운 사회에서 출현할 수 있는 존재지향적 인간은 무제한의 소유를 향한 자기도취를 극복하고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발췌)

 

〈제시문 나〉

 

톰이 당연히 이렇게 말할 줄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톰은 자기가 세운 계획이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했을 때는 언제나 그 계획에 반대하는 의견은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에 세운 계획도 절대 반대를 허용하지 않았다. 톰은 그 내용을 설명해 주었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양식부터가 내가 세운 계획보다 열다섯 배나 더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세운 계획과 마찬가지로 검둥이 짐을 자유롭게 해줄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하다가는 세 사람 모두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안고 있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만족해하며 힘껏 해보자고 말했다. 지금 여기서 그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것이 그대로 이행될 리가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톰은 그 계획을 실행하면서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며 기회 있는 대로 멋진 생각을 덧붙일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톰은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만은 확실한 것이 있었다. 톰 소여는 진심으로 검둥이 짐을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줄 생각인 것이다. 이것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 가정교육을 잘 받은 훌륭한 한 남자아이가 있다. 집안에는 인격 있는 점잖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그 남자아이는 집안 망신을 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 아이는 우둔하지 않고 영리하며, 무식하지 않고 아는 것도 많아. 그리고 변덕스럽지도 않고 친절하다. 그런데도 이 아이는 명예도 정의도 감정도 다 내버리고, 이런 천한 일에 끼어들어 자기와 가족들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만들려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을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참으로 무모한 짓이었으므로 나는 얼른 일어나 진정한 친구로서 톰을 타일러 지금이라도 그 계획을 취소하게 하여 톰을 구원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략)

 

톰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에는 이글이글 노기를 띠고 콧구멍은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벌름거렸다. 그러고는 나를 보고 소리쳤다.

 

“누구에게도 짐을 가두어둘 권리는 없어! 어서 가! 빨리, 단 1분도 지체 말고! 석방해야 해. 짐은 노예가 아냐. 이 지구를 딛고 선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유의 몸이야!”

 

“아니, 얘야.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

 

“샐리 아주머니, 나는 한 마디 한 마디 모두 똑똑한 정신으로 말하고 있는 거에요. 아무도 가지 않는다면 내가 가겠어요. 나는 날 때부터 짐을 알고 있었고, 그건 톰도 마찬가지에요. 늙은 와트슨 아주머니는 두 달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데 짐을 강 하류 지방으로 팔려 했던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시고 유언으로 그를 자유롭게 해주라고 말했어요.”

 

“그러면 벌써 자유의 몸이 된 걸 알면서 왜 너는 녀석을 자유롭게 해주려 했니?”

 

“물론 그건 당연한 질문이에요. 나는 거기에 관련된 모험이 하고 싶었던 거예요.” -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핀의 모험’

 

〈제시문 다〉

 

노 라 : 8년 내내 ? 실은 8년이 더 되죠 ? 우리가 처음 알게 된 날로부터 우리는 진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어요.

 

헬메르 : 그럼 내가 당신을 계속 좋지 않은 일에 끌어들여야 했단 말이야? 당신이 전혀 도와줄 수 없는데?

 

노 라 : 좋지 않은 일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에요. 내 말은 우리는 한 번도 나란히 앉아 어떤 일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해 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헬메르 : 하지만 노라, 그런 건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아.

 

노 라 : 핵심에서 벗어나지 마세요, 당신은 날 한 번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난 부당하게 취급받았어요. 처음엔 아빠가 그러셨고, 그 다음엔 당신이 그랬어요.

 

헬메르 : 뭐라고? 장인하고 내가 당신을 부당하게 취급했다고?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했던 우리 두 사람이 당신을 부당하게 취급했다고?

 

노 라 : (고개를 흔든다) 아빠도 당신도 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어요. 날 좋아하는 게 재미있었을 뿐이지요.

 

헬메르 : 노라, 무슨 말이 그래!

 

노 라 : 헬메르, 사실이에요. 내가 결혼하기 전에 아빠는 내게 자신의 생각을 모두 말씀하셨어요. 난 그 견해들을 그대로 받아들였지요. 내 생각이 아빠 생각과 달라도, 절대 내색하지 않았어요. 아빠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아빠는 날 당신의 인형이라고 부르시면서 나와 놀아 주셨어요. 내가 인형을 갖고 놀 듯이요. 그러다가 당신과 결혼해서 이 집에 왔는데….

 

헬메르 : 우리 결혼 생활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가 있지?

 

노 라 : (담담하게) 내 말은 내가 아버지의 손에서 당신 손으로 옮겨 갔다는 뜻이에요. 당신은 뭐든지 당신 취향대로 했어요. 그래서 난 당신과 똑같은 취향을 갖게 되었지요. 아니면 그런 척했는지도 몰라요. 사실 나도 잘 몰라요. 아마 그 둘 다였을 거예요. 어떤 때는 당신과 취향이 같았을 테고, 또 어떤 때는 같은 척했겠죠. 지금 돌이켜보니 난 이곳에서 날품팔이처럼 살았단 기분이 들어요.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사람처럼요. 난 당신에게 재주를 부리면서 먹고산 거죠. 당신은 내가 그러길 바랐고요. 헬메르, 당신과 아빠는 내게 큰 죄를 지은 거예요.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건 모두 아빠와 당신 탓이에요.

 

헬메르 :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어? 조금도 고마워하지도 않고 말이야! 당신은 이 집에서 행복하지 않았단 말이야?

 

노 라 : 행복하지 않았어요. 한 번도 행복한 적 없어요. 행복하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어요.

 

헬메르 : 행복하지 않았다고?

 

노 라 : 그래요. 단지 즐거웠을 뿐이에요. 당신은 늘 내게 친절했지요. 하지만 우리 집은 놀이를 하는 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이곳에서 난 당신의 인형 같은 아내였지요. 아빠 집에서 인형 같은 아이였듯이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내 인형이었지요. 당신이 나와 놀아 줄 때면 난 즐거웠어요. 내가 아이들하고 놀아 줄 때 그랬던 것처럼요. 헬메르, 그게 우리 결혼 생활이었어요. (중략)

 

노 라 :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주위 세계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완전히 나 혼자 서야 해요. 그래서 당신 곁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어요.

 

헬메르 : 노라! 노라! -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

 

● 논제

 

〈제시문 가〉에 나타난 진정한 삶의 양식을 말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시문 나〉의 톰, 〈제시문 다〉의 노라의 행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하시오.

 

※ 유의사항

 

1.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분량은 1,000자(± 100자) 내외로 할 것.

 

2. 제목은 쓰지 마시고 특별한 표시를 하지 말 것.

 

3. 글 안에 자신을 드러낼 내용은 쓰지 말 것.

 

4. 제시문 속의 문장을 그대로 쓰지 말 것.

 

5. 검정(파란)색 펜을 사용하고 제목을 쓰지 말 것.

 

6. 맞춤법과 원고지 사용법 및 교정법을 지켜서 쓸 것.

 

● 출제 의도 - 현대사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현대사회는 소비지향의 사회이다. 산업 시대가 개막한 이래 사람들은 자연을 지배하고 물질적 풍요를 가져오며 최대 다수에게 최대 행복을 가져다주는 자유가 보장된다는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산업 시대는 사람들에게 최대 행복과 쾌락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오히려 사람들은 생존의 존재양식에 대하여 관심을 두지 않고 소유 양식을 당연한 생존 양식으로 알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지배와 경쟁에 두지 않고 배려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살아있는 관계의 회복이야말로 에리히 프롬이 외치는 인간존재의 지향점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적으로 소유지향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회적 계층의식을 나타내는 아비투스를 비롯하여 소유양식의 삶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학생들은 에리히 프롬의 소유양식 또는 존재양식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에 대한 인식이 톰과 노라에게 나타난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톰은 타자의 해방을 외치며, ‘인형의 집’에서 노라는 주체의 해방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은 소유양식을 생활양식으로 알며 살아간다. 이때 인간관계는 붕괴되고 사랑의 본질은 훼손되는 것이다.

 

톰이 사는 세상은 노예를 소유하는 곳이다. 인간이 주체가 아니라 객체가 되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외칠 수는 없는 것이다. 노라가 사는 공간도 마찬가지이다. 헬메르에게 있어 노라는 객체였던 것이다. 아버지와 헬메르의 인형으로서의 객체가 주체적 인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톰과 노라의 해방이야말로 진정한 관계의 회복을 외치는 것이다.

 

물질만능주의의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톰과 노라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증을 잘 잘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이번 논제를 통해 학생들이 현대사회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바란다.

 

■ 2014 전북 중·고생 논술대회 중등부 제시문

 

바다 한가운데 ‘산드라’라는 섬나라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제주도 2개만한 크기의 이 섬나라는 맑고 잔잔한 바다와 온난한 기후를 가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사람들은 주로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거나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다. 잔잔한 바다에는 언제나 고기 떼가 풍부했으며, 적당한 양의 비가 내리는 땅에서는 곡식이 무럭무럭 잘 자랐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전쟁의 위협도 받지 않아 그야말로 지상의 낙원이라 할 만했다.

 

나라는 풍요롭고 사람들은 모두 평화롭게 살고 있었으므로 산드라의 왕은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일 년의 반은 육지나라를 여행하며 지냈다. 나머지 반은 산드라의 학교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여행담을 들려주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 이상하게 바다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기 시작했다. 한번 출어를 하면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아오던 고깃배들의 고기 상자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고기 상자는 반으로 줄어들더니 어떤 때는 거의 빈손으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그나마 잡힌 생선에는 이상한 냄새가 나기도 하였다.

 

고기가 잡히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많은 소문들이 돌았다. 바다의 수온이 변해 물고기가 사라졌다고도 하였고, 대륙의 공장에서 폐수를 마구 버려 바다가 오염되어 일어난 일이라고도 하였다. 심지어는 최근에 바다에서 자살한 처녀의 원혼이 고기를 못 잡게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어쨌거나 고기는 사라졌고, 고기가 사라지자 민심이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먹을 것이 줄어들자 사람들은 다투기 시작했으며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허! 큰일이군.”

 

여행에서 급히 돌아온 산드라 왕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백성들을 먹여 살리지?”

 

대신들도 연일 회의를 거듭했다. 그러나 풍요에 빠져 있던 대신들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였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나라는 점점 전쟁 같은 분위기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래! 바로 이거다! 해결책이 생각났다.”

 

산드라 왕은 무릎을 탁 쳤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산드라 왕은 한 가지 일을 기억해 냈다. 언젠가 여행 중에 다른 나라의 왕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우목도리를 탐내며 비싼 값으로 사갔던 일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 여우목도리는 산드라 섬의 여우를 잡아 만든 것이었으며 산드라 섬에는 여우가 아주 많았던 것이다.

 

왕은 긴급히 대신을 불러 육지로 내보내 여우목도리가 아직도 비싼 값으로 팔리는지 알아보도록 했다, 얼마 후 돌아온 대신은 왕이 원하는 대답을 가지고 왔다.

 

“맞습니다. 여우목도리는 아주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 잘 됐다. 우리는 이제 고기를 잡지 않아도 된다. 여우를 잡아 근사한 목도리로 만들어 다른 나라에 팔기로 했다. 전 백성들은 여우를 잡도록 하라!”

 

왕의 명령에 배고픈 백성들은 여우를 잡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요령을 몰라 잘 잡지 못하였으나 점차 사냥 방법을 깨우치자 포획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섬에는 가공 공장이 들어서고 값비싼 여우목도리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비싼 값으로 팔려나가자 백성들은 다시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점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찌된 일인지 들과 산에 들쥐가 들끓기 시작했다. 들쥐는 농작물에 심각한 피해를 주어 한해의 농사를 완전히 망쳐버렸다. 들쥐는 먹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먹어치웠으며 심지어 마을과 도시에까지 내려와 쏘다니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왕비의 침실에까지 침입하여 왕비를 기절시키기도 하였다.

 

들쥐뿐이 아니었다. 다람쥐도 늘어나고 산토끼도 늘어나 들과 산에 작은 동물들이 득실거렸다. 왕은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였지만 사실 문제가 심각했다. 작은 동물들이 득실거리자 농작물 피해가 늘어났다. 들과 산에는 작은 풀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산은 점차 민둥산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가 내리면 이내 홍수가 나서 마을과 도시를 덮치곤 했다. 들쥐들이 병균을 옮겨 전염병이 돌기도 했다. 그래서 산드라 섬은 점점 황폐한 섬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먹고 살기가 어려워지자 그 나라를 떠나는 백성들도 늘어만 갔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변해버린 이유가 무엇이냐? 대책을 강구하라!”

 

왕은 매일 대신들에게 호통을 쳤지만 대신들은 머리만 조아릴 뿐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 출전 : 김규진, 여우나라

 

● 논제

 

제시문을 바탕으로 오늘날 자연환경이 파괴된 원인을 찾고, 자연과 인간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사례를 들어 논하시오.

 

※ 유의사항

 

1.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분량은 800자(± 80자) 내외로 할 것.

 

2. 제목은 쓰지 말고 특별한 표시를 하지 말 것.

 

3. 글 안에 자신을 드러낼 내용은 쓰지 말 것.

 

4. 제시문 속의 문장을 그대로 쓰지 말 것.

 

5. 검정(파란)색 펜을 사용하고 제목을 쓰지 말 것.

 

6. 맞춤법과 원고지 사용법 및 교정법을 지켜서 쓸 것.

 

● 출제 의도 - 자연과 인간 바람직한 관계 정립

 

인간과 자연과의 바람직한 관계는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인간이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였다. 인간은 자연과 떨어져 살 수 없는 존재로, 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자연에 빚을 지며 살아왔다. 하지만 인간은 어떠한가? 인간은 자신의 욕심과 편리를 위해 제멋대로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해 왔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4대강의 녹조 현상 역시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참극이다. 4대강을 인간에게 유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강 주변의 생태계를 무참히 파괴했고, 그 결과가 고스란히 인간에게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의 바람직한 관계 문제는 해묵은 논란거리가 아닌 바로 지금 우리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문제이다.

 

우리가 김규진의 동화 〈여우나라〉를 제시한 맥락도 바로 이러한 연유이다. 김규진은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산드라섬’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들은 바다가 파괴되어 더 이상 자신들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얻지 못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인간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즉 자연과 인간의 공생에 대해 다시 생각했어야 했다. 그러나 ‘산드라섬’의 주민들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들의 욕구를 위해 여우를 무착별로 남획했고, 그 결과 상황은 더 악화되고 말았다.

 

결국 이 우화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인간과 자연은 착취와 피착취, 이용과 제공의 관계가 아닌 공생의 관계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이 자연에 손도 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연을 인간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되 자연의 생태계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즉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면서 인간도 풍요로울 수 있는 친환경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태양열 에너지는 어떠한 자연에 해로운 물질을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줄 수 있다. 이처럼 인간과 자연을 모두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는 더 이상 인간도 자연도 남아 있지 않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이번 논제를 통해 학생들이 이러한 점을 고민하기를 바란다. 먼저 제시문을 통해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러한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생태윤리학적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고 과정을 얼마나 논리적이고 창의적으로 전개해 나가는가를 집중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인간과 자연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자연은 씹다가 단물이 빠지면 버리는 껌이 아니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 그 부작용은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온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이번 논제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