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15년 전, 무주에서 〈무주군지〉를 편찬하면서 이러 저런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던 중, 이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적상산사고와 관계된 자료를 조사하면서 접한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까지 잘 보관되던 적상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이, 낱장으로 찢겨진 채 엿장수가 엿을 파는 데 사용하였다거나, 한국전쟁 초기에 부산으로 옮겨졌으나 불에 타서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후 나의 관심은 적상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 행방을 찾는 데 집중되었다. 그 결과 오래지 않아 북한 김일성대학에 보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한에서는 불에 타 없어진 것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서울 점령과 동시에 김일성의 특별지시에 의해서 북한으로 옮겨졌고, 현존하고 있었다. 분단이라는 비극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조선왕조실록〉에 관한 관심이 커졌고, 특히 보존과 관련된 자료의 수집과 정리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조선왕조실록〉은 어떻게 보존되어 오늘에 전하게 되었는가? 임진왜란과 같은 국가 위기상황에서도 〈조선왕조실록〉을 지킨 이들은 누구인가? 임진왜란 이후 신속하게 〈조선왕조실록〉을 복인(復印)하고 사적분장지책(史籍分藏之策)에 따라 다시 전국에 사고(史庫)를 설치하고 보존한 배경은 무엇인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였다.
그 결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조선왕조실록〉에 관한 연구는 다양하게 진행되었으나 편찬된 실록을 보존하고 지켜낸 과정과 사연에 대해서는 그간 연구에 소홀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실록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서 서울과 지방에 사고를 선정하는 과정과 사고 설치 이후 운영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를 문헌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다. 특히 사고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지침서인 ‘사고수직절목(史庫守直節目)’의 제정과정과 실지 운영에서 나타난 문제점, 조선전기 지방의 중심지역에 설치되었던 4대 사고와 임진왜란 이후 산중과 산성 등에 설치된 조선후기 각 사고의 차이 등에 관한 비교 검토, 사고 설치로 인한 지역사회의 변화 등 실록의 보전을 위한 사고제도와 그 운영관리체계에 대해서 정리하고 싶었다.
조선시대 실록을 어떻게 보존했는가를 공부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선 못지않게 고려시대에도 실록이 편찬됐고, 한 부가 아닌 두 부를 제작해서 수도인 개경 뿐 아니라 합천 해인사에 외사고를 설치해 보존했다. 왜구의 끊임없는 침략에 대비하여 외딴 섬이나 험한 산중의 사찰로 이안하면서 지켜냈다는 것이다.
한편 조선시대 실록의 편찬 이후 각 사고에 봉안하는 과정을 보면, 전주사고에서는 봉안사를 맞이하기 위해 전라감사가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인 논산 황화정까지 마중을 나갔다. 실록의 사고 봉안 때 전라감사는 사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봉안례에 참례하지 못하고 사고 밖에서 기다리는, 현대의 시각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사실을 확인했다.
임진왜란 당시 유일본이 된 전주사고본 실록을 정읍 태인의 유생 안의와 손홍록 등 지역민과 관원이 합심해서 정읍 내장산에 옮겨 실록이 온전하게 지켜졌다는 사실도 구체적인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봉안사와 포쇄관에 대한 지역민의 접대가 조선후기에 들어서 소홀해지는 등 사고 관리 체계의 변화 등이 눈에 띄었다.
특히 오늘의 무주군이 성립된 결정적인 배경이 적상산성과 적상산사고 설치였다는 점도 볼 수 있었다. 험한 두메산골이었던 적상산사고를 찾는 봉안사와 포쇄관의 노고를 위로하는 볼거리로 ‘낙화놀이’가 무주 남대천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은 덤으로 알게 되었다.
필자의 〈조선시대 사고제도(史庫制度) 연구〉는 조선왕조실록을 보존하고 지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고에 관한 학위논문이다. 조선전기에는 전주사고가, 임진왜란 당시에는 정읍 내장산 보존터에, 조선후기에는 무주 적상산사고에 실록이 보존됐다. 전북은 조선전기부터 후기까지 실록이 보존된 유일한 지역이다. 현존하는 실록 3부 중 태백산사고본 실록을 제외한 2부가 전주사고본과 적상산사고이다. 즉 전북은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고장이라는 자긍심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이는 도내 역사문화자원의 근간이 될 수 있다.
△저자 박대길 씨는 전남대 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전북대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정읍시청 동학농민혁명선양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