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과 도시, 근대와 현대 아우른 삶
60세를 기점으로 활발하던 경영은 마감되고, 지난 적 삶을 성찰하거나 음미하는 시기다.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성취와, 아직도 저급한 가치에 탐닉하며 미로를 헤매는 등의 두 가지 모습으로 구분해 지기도 한다. 그러나 저러한 평가 외에도 60대에는 대체로 한 가지 더 불순한 이미지가 붙어 있다. 회색 세대라는 의미의 외연(外延)으로 분장된 것이다. 언제나 생활하는 시간대도 과도기다. 생성과 소멸 사이, 생산과 소비 사이, 상승과 퇴락 사이 등의 어름에서 멈칫거린다. 흑백의 논리가 서로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극렬하게 논쟁할 때에도 60대는 엉거주춤 절충의 공간에서 쭈밋거리기만 했다. 어떤 사조(思潮)나, 의식이나, 생활 양식이 변천의 급류를 탈 때에도 주체자로서가 아닌, 객체자로서 휘둘림을 당한 세대다.
우리나라 산업이 발달되어 오던 때에도, 전통의 고수를 집요하게 주문하던 앞 세대와, 그들이 전에 향유하던 문화를 인습이라고 단정해버리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어야 했다. 열심히 일해서 가정을 윤택하게 이뤘음에도, 우리나라 생활 수준을 이만큼이나 높이는 데 기여했음에도 이제는 오히려 전진의 걸림돌로 하대받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모든 사회 현장에서 퇴출의 우선 순위로 지목된 지 오래다.
앞 세대를 잘 모셨지만 뒷세대에게는 소홀하게 대접받아도 내색조차도 할 수가 없는 세대인 것이다. 술을 많이 마시는 세대요, 빚보증을 잘 서 주던 세대였다. 청장기엔 집 장만에서부터 모든 생활 전선에서 진력하여 가족에게 고스란히 희생된 세대이다. 조상들 무덤을 잘 돌보았으면서도 훗날 자신의 주검을 어떻게 부탁해야 할 지를 걱정한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밖에 나와, 세계화 정보화 세상에서 늘 쩔쩔맨다. 컴퓨터에 조롱당하고 스마트폰이란 괴물에 농락당한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생경하다. 음식은 서양풍으로 변해 그들의 식탁은 자신의 기호를 고집할 수가 없다. 어린이날은 융숭했지만 어버이날은 카네이션 조화 한 송이로 만족해야 한다. 퇴직금은 자녀 교육비다 혼수금이다 하여 이미 통장이 고갈 상태다. 60대는 매사에 회의를 품는다. 결단은 더디고, 번민의 회랑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다. 양보하고 망서리며, 진정한 자아는 방기한 상태다.
모든 세상 소리를 순화 경청할 수 있어
그러나 이제는 60대를 칭송하고 경륜을 높이 사야 할 때다. 모든 분야에서, 그것이 예술이건, 학문이건, 또는 고급 문화를 영속시키는 일이건, 이제는 이 60대에게 마지막 선승(善勝)의 결말을 도출하는 신성한 역할을 맡겨야 한다. 60대를 내치는 가정이나 국가 사회는 쇠락하거나 어두운 미로에서 유랑할 것이다. 그들은, 도시와 시골을 거쳐온 삶, 근대와 현대를 아우른 삶이었다. 많은 경험과 이성적 사변으로 변증법적 예지와 슬기를 창도할 것이다. 60대는 이미 사악함은 걸러지고 모든 경역에서 벌써 달인이 되어 있다.
모든 세상소리를 순화 경청하는 이순의 60대를 칭송해야 할 때에 공자의 거룩한 말씀이 퍼뜩 상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