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달인’으로 불리는 신정일 걷기모임 이사장은 빠른 것에 익숙해진 세상에서 느리게 걸으면서 여러 사물을 만나게 되고, 결국 내가 나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걷기의 매력이라고 극찬한다.
속도와 경쟁, 생산성이 강요되는 빠른 사회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이 많다. 유유자적하며 느리고 여유 있게 사는데 가치를 둔다. 이런 시도가 슬로시티 운동이다.
6월말 현재 29개국 189개 도시가 슬로시티로 지정돼 있다. 우리나라 슬로시티는 ‘느려서 더 행복한 섬’ 증도(신안군)와 청산도(완도군) , 차 재배지로 세계 최초인 악양면(하동군), 한옥마을(전주시) 등 11곳이다. 애초 12곳이었지만 장흥군 유치면은 요건 불비로 탈락했고 증도는 지난 1일 재인증을 받아 회생했다. 국제슬로시티연맹은 인구와 환경, 유기농 생산과 소비, 전통음식과 문화 보존, 차량통행 제한 및 자전거 이용, 패스트푸드 추방 등 까다로운 가입조건을 규정해 놓고 있다.
문제는 내년 11월 재인증을 앞둔 전주 한옥마을이다. 한옥마을은 2010년 슬로시티로 지정됐지만 상업시설이 지정 때보다 3배 이상 늘어나는 등 급격한 상업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700여채 중 366곳이 상업시설이니 한 집 건너 음식점, 커피숍, 전통찻집, 숙박시설 등인 셈이다. 고즈넉한 정취는 사라지고 기존의 자생적 문화인력들은 상업자본에 밀려났다.
한옥마을이 기왓장만 얹어져 있을뿐 패스트푸드로 도배된 상업시설로 채워져 있다면 신시가지나 다름 없고 생명력도 길지 못할 것이다. 슬로시티는 전통 보존, 지역주민 중심, 생태주의 등 3대 가치를 추구하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모색한다. 그런데 이젠 이런 가치를 찾기가 어렵다. 슬로시티 재지정을 앞두고 고민이 많을 것이다. 그 여부를 떠나 한옥마을의 정체성 만큼은 회복돼야 한다. 그리고 한옥마을 같은 도시형 슬로시티는 특화된 인증기준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증도나 청산도의 기준을 한옥마을에 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