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은 학생이 뽑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교육은 학생들의 권리 / 올바른 교육정책·제도 선택 할 기회 주어져야

조례안, 예산안, 결산서의 작성, 교육규칙의 제정, 교육 기관의 설치 이전 및 폐지에 관한 사항, 교육과정의 운영에 관한 사항 결정 등 교육감이 관장하고 있는 중요 사무 중 일부만 서술한 것이다. 교육감은 시·도 교육 학예에 관한 한 대통령에 버금간다.

그럼 이런 교육감의 모든 활동에 대한 이유와 원인을 제공하고, 이런 활동들에 대한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아내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바로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다. 그런데 바로 그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의 교육감을 뽑을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왜 교육감 선거로 인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학생들에게는 선거권도 주지 않으면서 교육감 선거를 하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가져보고 싶다.

과연 그 동안 통용되어 왔던 이유처럼 학생은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선거를 치르기에는 너무 순수하기 때문일까? 그럼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그렇다면 선거를 할 수 있는 어른들은 얼마나 성숙할까? 교육감 선거는 정당 선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성향과 A 후보의 성향이 같으면 A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보통의 사례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왜 이 후보를 지지하느냐고 물으면 명쾌한 답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는 것일까. 교육감의 성향을 볼 가능성이 높다. 교육감이 보수 성향인지 아니면 진보 성향인지. 사실상 정당만 보고 투표하는 실태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는 교육감 선거에만 국한되지 않고, 후보의 공약과 가능성을 보기 보다는 이미지와 성향을 중시하는 선거의 현 세태가 짙게 묻어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이 바로 ‘성숙한’ 어른들의 선거다. 그럼 학생들이 미성숙하다고 하는 근거는 뭘까? 이미 여성이나 흑인들은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선거에서 배제되어 온 역사가 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모든 영향을 그대로 받아내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에서는 항상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배제되어 왔다.

복장, 두발, 교육 방식, 대입제도 등 학생들의 모든 것들을 결정한 것은 단지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학생이 아닌 어른들이었다. 어른들 구미에 따라 교육정책을 수도 없이 바꾸면서 학생들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었던 것이다. 어른들의 선택에 따라 교육감이 바뀌고 교육감의 정책에 따라 교육 제도가 바뀌어도 학생들은 항의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그 제도대로 생활해야 했던 것이 지금까지 계속된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교육감 선거에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 그 ‘성숙’하다는 어른들조차 막상 선거 전단지가 집으로 배달되어 오면 그것을 꼼꼼히 읽어보기 보다는 곧바로 휴지통에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선거에서 당선된 교육감의 정책을 학생들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가 있는가? 학생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환경을 바꿀 수 있다면 분명히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할 것이다. 교육감들이 내세우는 공약 또한 더욱 구체화되고 학생들을 위하게 될 것이다.

공약이 실현되지 않으면 학생들은 그들의 ‘미성숙함’과 ‘순수함’을 내세우며 더욱 강력하게 항의할 것이다. 교육감은 학생들이 뽑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학생들이 자신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선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학생들의 선거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만큼 자신의 교육을 선택할 권리도 분명히 있어야 한다. 비단 선거가 아니더라도 학생들에게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학생들이 자신들에게 맞는 교육을 선택하기에는 너무 미성숙하고 순수하다고? 모두 기억하자. 인류사에서 역사를 바꿔왔던 것은 모두 그 ‘미성숙함’과 ‘순수함’에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