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백의종군 루트

명장 이순신은 사후에야 빛을 본 인물이다. 선조의 무능과 정쟁으로 7년 동안이나 일본의 침략에 시달린 조선을 구해낸 영웅이지만 상당 기간 조명 받지 못했다.

 

정조시대에 와서야 대접다운 대접을 받았다. 정조는 임진왜란 발발 200주년이 되는 1792년 이순신을 영의정으로 가증(加贈)했다. 또 이순신의 글들을 모아 ‘이충무공전서(全書)’를 편찬했다. 호남의 자긍심이 잘 드러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란 표현도 이 전서에 들어 있다.

 

이순신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일본이 후하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 함대의 수장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1848∼1934)는 “나를 영국의 넬슨에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순신에 비교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 했다.

 

산케이신문 기자 출신의 일본 국민작가인 시바 료타로도 이순신을 ‘세계 제일의 해장’이라 극찬했다고 이치백 전북향토문화연구회 회장은 전했다.

 

이순신의 존재는 조선에서 오랫동안 잊혀졌지만 오히려 헤이하치로나 시바 료타로 등 일본 측에서 그의 존경심이 계승됐다는 것이다.

 

성웅이 아닌 인간 이순신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는 난중일기는 이야기(story telling) 보물창고다. 1597년 초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가 가까스로 풀려나 한양∼경기∼충청∼전북∼전남 승주에 이르기까지 백의종군의 길을 떠나는 일정도 그런 경우다. 이중 전북구간의 행적이 관심을 끈다.

 

“전주 남문 밖 이의신(李義臣)의 집에서 잤다. 판관(부시장) 박근이 보러왔다. 부윤(시장)도 대접했다. 기름 먹인 두꺼운 종이와 생강을 보내주었다. 이튿날 일찍 떠나 오원(관촌) 역에서 쉬고 아침도 먹었다. 조금 뒤 도사(부지사)가 왔다. 저물어 임실현에 이르렀다. 원(현감) 홍순각이 나왔다.”

 

이의신은 덕수 이씨 신(臣)자 항렬로 보아 이순신의 친인척일 것이다. ‘남문 밖 이의신의 집’이 어느 곳쯤 될지 궁금하다. 이곳을 찾는다면 한옥마을과 연계한 좋은 스토리텔링 소재가 될 것이다.

 

나아가 삼례∼전주∼관촌∼임실∼남원에 이르는 ‘이순신의 백의종군 루트’를 발굴하는 것도 욕심 낼만 하다. 행정기관과 학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댄다면 가능할 것이다. 모함 당해 고초를 겪고, 성치 않은 몸을 이끌며 백의종군한 이순신의 행로와 발자취는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