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브래드 쇼’는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료〉라는 책을 통해 말한다. ‘아이의 감정이 억제되었을 때, 특히 화가 나거나 상처받았을 때의 감정들을 그대로 가진 채 자라서 성인이 된다면, 그 아이는 어른이 된 후에도 마음속에 자리 잡아 성인으로 행동하는 데 지장을 준다’라고.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란 프랑스 영화를 내면아이라는 관점에서 봤다. 영화는 33세된 총각 피아니스트‘폴’(귀욤 고익스 분)의 잃어버린 시간에 초점을 맞춘다. 폴은 두 살 때 건물 붕괴사고로 부모를 잃고 그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렸다. 열등감과 상실감으로 늘 괴로워했다.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이면서 수차례 콩쿠르에서 한 번도 입상하지 못했다. 이모들이 운영하는 댄스교습소에서 영혼 없는 반주를 하고 산다. 초점 잃은 눈동자에다 처진 어깨, 정면을 주시하며 걷는 습관…. 역동 (力動)이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마음 구조는 다분히 본능 쪽이다. 과자 ‘슈게트’를 먹을 수 있을 때 좋아하고, 먹을 수 없을 때 화를 낸다.
영화는 그의 기억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시작부터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을 인용한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진정제가, 때로는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기억을 꺼내는 데 두 가지 방법을 쓴다. 첫째는 꿈이다. 그의 꿈에 나타나는 아빠는 엄마를 때리는 폭군이고, 자신에게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괴한이다.
둘째는 최면이다. 어느 날 그는 맹인 조율사를 따라 같은 아파트 4층에 있는 ‘마담 프루스트’(앤 르니 분)의 비밀정원에 가게 된다. 마담은 신비한 식물을 가꾸고 있었다. 차와 ‘마들렌’이란 과자를 만드는데, 이를 먹는 사람은 최면에 들고, 그 상태에서 오만 가지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마담은 이 방법으로 심리치료를 하는 것이었다.
재미를 붙인 폴은 수시로 정원을 드나들며 과거로 여행한다. 기억의 소용돌이 속에서 웃고 울기를 반복하던 그의 눈에서 불똥이 튄 것은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장면에서다. 반복되는 이 상황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말하려 함이지 싶다.
폴은 댄스교습소를 하는 두 이모의 손에서 자란다. 질서, 논리, 이성이 지배하는 춤 그리고 음악을 강조하는 그녀들을 두고 수강생들은 “누가 클럽에서 ‘미뉴에트’를 출까요?”라며 비아냥거린다. 초자아의 화신이랄 수 있는 이모들의 욕망은 이율배반적인 데가 있다.
아빠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을까? 어느 기억여행에서 폴은 아빠와 엄마가 링 위에서 치열하게 싸우다가 끝날 때 다정하게 포옹하며 하트를 날리는 모습을 본다. 영화는 차츰 폴의 아빠에 대한 생각이 고상한 이모들 때문에 왜곡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모들은 천사 같은 동생이 불한당 같은 남자(아빠를 지칭)에게 시집가서 고생하는 게 싫었을 터. 음악을 숭상하는 가문의 전통, 이를 거스르는 동생 내외의 삶이 미웠을 것이다. 아빠에 대한 미움은 폴에게 투사되고 폴은 자신의 무의식에 아빠를 나쁜 사람으로 저장한 것이다.
영화는 폴의 기억에 모빌과 개구리 인형을 자주 등장시킨다. 모빌 뒤에는 항상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엄마가 등장하고, 개구리 인형들은 패거리로 나타나 악단이 된다. 신명 나게 연주하는 모습은 폴이 원하는 음악세계려니 싶다. 심리치료가 진전을 보일 즈음 폴은 콩쿠르에 나가 당당히 우승한다. 연주할 때 개구리 인형의 환영이 나타나고 이들과 함께 미친 듯이 연주한다. 지긋지긋하게 발목을 잡았던 내면의 아이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 꿈속에서 아빠와 함께 등장하던 ‘그랜드 캐니언’에 간다. 이곳은 무의식의 숲이 아닐까? 폴은 계곡을 등지고 자기 아이를 향해 다정하게 말한다.
“빠, 빠!”
기억. 우리는 이를 어떻게 꺼내 쓰는가. 마담 프루스트는 말한다. “나쁜 추억은 행복의 홍수아래 가라앉게 해. 기억은 물고기처럼 물속 깊숙이 숨어 있거든. 네가 낚싯줄이라면 기억들이 좋아하는 미끼를 던져야 하겠지.”
정원을 찾는 고객 중에 의사선생님도 있다. 그는 직업상 불안이 있다며 동물과 일하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아빠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되기는 하였지만…. 영화를 같이 본 G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런 정원이 실제로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