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앞둔 진안 용담댐 수몰민들 "물에 잠긴 옛 집, 명절엔 더 그리워"

갈 수 없는 마을 먼발치서 가족 모여 향수 달래 / 고령화에 동향 모임 사람들 점점 줄어 아쉬움

▲ 34년 전 고향 진안을 떠난 고영초씨(왼쪽 다섯번째) 가족이 용담댐 인근 휴게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고향이 진안인 고영초씨(52·서울시)는 명절만 되면 가슴이 시리다.

 

34년전 까까머리 고교생 때 고향을 떠난 고씨의 고향마을은 현재 물에 잠겨 있다. 그의 가족이 떠난지 10년이 흐른 뒤부터 용담댐 공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수십년이 지나 이젠 잊을만도 하지만 고향 마을은 눈에 선하다.

 

“고향을 떠난 뒤에도 명절 때면 고향을 찾아 그리운 이들을 만나 함께 웃고 즐겼는데…댐 공사가 시작된 후로는 그런 고향의 정을 느낄 수 없어 쓸쓸하기만 합니다.”

 

그의 고향은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 두곡마을.

 

1990년부터 시작된 용담댐 건설로 진안읍, 상전면, 용담면, 안천면, 정천면, 주천면 등 1개읍 5개면 68개 마을이 수몰됐다. 그로인해 마을에 살던 2864가구 1만2000명의 주민은 고향을 뒤로 한 채 새로운 터전으로 떠났다.

 

고씨처럼 댐 공사 전에 고향을 떠난 이들까지 합하면 수몰민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부모님이)처음엔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로 떠났지만, 언젠가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살고 싶어하셨습니다. 이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돼 버려 지켜보는 마음이 서글픕니다.”

 

그래도 한가지 위안거리가 있다면, 고향친구들과 가끔 연락을 하며 만나서 회포를 풀기도 하는 것. 또 명절이 되면 가족 모두 진안으로 내려가 고향마을이 바라보이는 곳까지 가서 손으로 하나하나 짚어보며, 없는 살림에도 웃고 뛰놀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동창회 같은 중요한 모임은 꼭 진안에서 합니다. 그런때라도 먼 발치에서나마 고향을 보며, 쌓인 향수를 달래곤 합니다.”

 

대전에 사는 옥광삼씨(69)는 1990년 고향인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 운교마을을 떠났다.

 

현재 재대전 용담면 향우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명절이면 고향에 있는 조상 묘를 찾는다.

 

살던 마을은 물에 잠겨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지만, 그렇다고 고향 한켠을 지키고 있는 조상의 영령을 모시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어서다.

 

“명절이 돼도 예전 같은 기분은 느낄 수 없습니다. 차례를 지내고 선산을 찾아 고향땅을 굽어보시는 조상님을 모시는 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덜곤 합니다.”

 

하지만 점차 수몰민이 고령화되면서 함께 고향의 모습과 정을 나누던 이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요즘 그는 더욱 고향이 그립다.

 

정기 모임에 나오는 고향민이 한때는 40여명에 달했지만, 최근에는 그 수가 절반 이상 줄었다.

 

“현재 수몰민은 60~70대 이상 고령자가 대부분으로, 함께 고향을 그리고 추억할 이들이 점차 줄고 있습니다. 살기도 팍팍해지면서 예전처럼 서로 아끼고 의지하는 일도 줄어 아쉽습니다.”

 

옥씨는 “어느 자리에 있어도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다”면서 “올 명절에는 모두 다시 모여, 정을 나눌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해본다”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