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속담이 있다. ‘가까운 곳을 멀리 있는 곳보다 모른다’는 뜻이다. 바로 내 말이다. 수십 년간 이 나라 이 땅의 길을 이 잡듯이 헤매고 다닌 내가 정작 엎드리면 코 닿을 만한 곳에 숨겨진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 했으니.
오래 전부터 이렇게 저렇게 전주의 여러 길을 걸었으면서도 그 길이 이어지면 어떤 길이 되리란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차일피일 세월이 흐르다가 그 길들을 ‘한 번 걸어보자’ 하고서 걷다가 보니 그대로 보석 같은 길이 펼쳐졌다. 전주의 길을 이어서 붙인 길 이름이 ‘전주 천년 고도 옛길’ 12코스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이 바로 1코스인 ‘건지산 길’이다.
△최고의 연지(蓮池), 덕진공원
전주 사람들의 휴식처인 덕진공원이 건지산 길의 초입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연못 중의 하나인 덕진공원에서 건지산을 지나 가련산으로 해서 전주 천변까지 이어지는 길, 그 길이 얼마나 운치 있는 길인지는 걸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건지산 길은 덕진공원의 입구인 연지문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라 안에 최고의 연지(蓮池)를 자랑했던 덕진연못은 가련산과 건지산 사이에 있다.
이 덕진연못에 관한 글이 〈신증동국여지승람〉 ‘산천’ 조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덕진지는 부의 북쪽 10리에 있다. 부의 지세는 서북방이 공결(空缺)하여 전주의 기맥이 이쪽으로 새어버린다. 그러므로 서쪽으로는 가련산으로부터 동으로 건지산까지 큰 뚝을 쌓아 기운을 멈추게 하고, 이름을 덕진이라고 하였으니, 둘레가 90 73자이다. 풍월정(風月亭)의 시에 ‘깊은 못을 일망하니, 푸린 하늘이 비쳐 있네. 고래로 이 못을 파기에 몇 사람의 공이 들었을까. 마을 연기 멀리 끼어 가을달이 몽롱하고, 어부의 피리소리는 저녁 바람에 비꼈도다’”
고려 시대에 유행했던 풍수지리설 때문에 조성된 덕진연못은 못의 절반을 뒤덮는 연꽃과 빼어난 조경 때문에 시민공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덕진연못에서 흘러내린 물은 송천동을 지나 전주천의 물과 합한 뒤 만경강으로 들어간다.
언제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덕진공원에 부안 출신 시인인 신석정의 시비와 동학의 삼대 지도자인 전봉준의 동상, 그리고 김개남과 손화중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사람이 살만한 곳을 지리, 인심, 산수, 그리고 생리라고 평한 실학자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는 전라도 일대에서 가장 살만한 곳이라고 평한 곳이 전주였다. 그 중에서도 연꽃 향기 그윽한 덕진공원 일대는 그 빼어난 아름다움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곳이다.
△〈혼불〉의 못다한 이야기 서려
덕진연못을 지나 전북대학교 예술대학을 거쳐 도로를 건너면 연화마을의 초입에 이른다. 그곳에서부터 본격적인 건지산 길이다. 연화마을 입구에 있는 작은 샛길로 접어든다. 불과 십여 미터도 오르지 않았는데, 마치 심신산골에 들어선 듯 나무숲이 울창하다.
길은 단풍터널로 이어지고 그곳에서 조금 오르면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대하소설인 〈혼불〉의 저자인 최명희 묘소에 이른다. 1947년 10월 10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출생하여 1998년 12월 11일 작고한 최명희는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 ‘쓰러지는 빛’으로 당선됐다. 그 뒤 〈혼불〉에 매달렸다. 이 책은 소설이기 이전에 역사와 민속, 사라져 가는 우리말의 보고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우리말이 도처에 펼쳐져 있다. 그리고 전해 내려온 민화와 옛글이 방대하게 실려 있다.
그는 기나긴 17년 동안 수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면서 글을 쓰다가 결국 〈혼불〉을 미완(未完)으로 남긴 채 생을 마감했다.
△단풍나무와 편백나무 사이로
〈혼불〉 속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바람결에 들릴 것 같은 최명희 묘소를 지나면 단풍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단풍나무 숲길이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단풍나무 숲길을 따라서 가다가 보면 복숭아 과수원이 나타나고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갈수가 없는 한 사람의 나그네라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았습니다.”
로버트 프루스트의 〈가지 않는 길〉을 떠올리며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하늘이 안 보이도록 빼곡하게 우거진 단풍나무숲에 이른다. 숲에서 한가로움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고, 그 길을 따라가다가 보면 장군바위라는 바위 하나가 덜렁 놓여 져 있다. 가끔 햇살이 눈비시게 내려 쪼일 때면 천지창조처럼 한줄기 햇살기둥이 은밀하게 비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은 산길을 올랐다가 울창한 숲 사이를 내려가면 복숭아 과수원 사이길이다. 오송지를 지나면 울울창창하게 우거진 편백나무 숲에 이른다. 아픈 사람의 몸을 치유 하는데, 더 없이 좋다는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가 편백나무의 정갈한 정기를 받아들인다.
“청춘의 힘과 정기는 점점 없어지고 나이와 함께 우리는 늙어간다.”
루크레티우스의 말을 이해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세상에 부대낀 마음들을 내려놓고 나무 아래서 스스로를 잊고 앉아 있다.
어디 여기 저기 아픈 현대인들만 그러했을까? 그리스인들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스치는 바람결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그들은 마음을 열고 들어오는 그 상쾌한 소리를 ‘사랑스러운 드라이드’, 숲의 요정들의 움직임으로 보았다. 또한 그리스의 시인들은 어떤 놀라운 발상이나 영감을 얻고자 할 때 그 스스로가 오랫동안 숲속을 배회, 즉 산책을 했다고 한다. 그들은 그 숲길을 걸으면서 세상을 떠돌면서 관조하고 있는 신(神)과 여신들의 생각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여야 된다고 믿었다.
△순간순간의 새로움에서 진리를
편백나무 숲에서 나무를 얼싸 안기도 하고 기대기도 하다가, 천천히 발길을 옮겨 어린 날의 기억 같이 그윽한 고개를 넘어서면 소리문화의 전당에 이른다.
“이 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데없다.”
문득 사철가의 한 대목이나,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의 4악장이 들릴 것 같은데, 푸른 나뭇잎만 바람에 휘날리는 길을 따라 가다가 우측으로 눈을 돌리면 나이든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사열하듯 서 있다.
장엄이랄까? 아니면 탄성이랄까? 하여간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마음으로 플라타너스 숲으로 들어가 그 굵은 나무에 등을 기댄다.
“사람이 나무를 지나갈 때, 그 나무가 있고, 나무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행복해 하지 않고, 어떻게 나무 옆을 지나갈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삶의 매 걸음마다, 방탕아까지도 경이롭게 느끼는 놀랄만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나무를, 아니, 모든 사물들을 사랑했으면 도스토옙스키는 이런 말을 남겼을까?
내가 나무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나무들이 막 말을 건넬 듯 싶다. 길은 숲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과수원 길로 이어지기도 하다가 대지마을에 이른다. 구부러지고 휘돌아가는 그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대들의 눈에 비치는 사물들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바라보는 모든 것에 경탄하는 사람이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의 한 구절처럼 경탄에 경탄을 거듭 하며 걷노라면 어느 새 나도 현자(賢者)가 될 것도 같다.
△온전한 고장의 무게 중심
이윽고 길은 호송동과 동물원을 잇는 포장도로롤 건너고, 길은 넓지도 그렇다고 좁지도 않다. 조릿대 우거진 길을 지나면 아름드리 참나무가 우뚝우뚝 서 있는 길, 그 길을 천천히 오르다 보니 건지산(乾止山)정상이다.
“전주부의 북쪽 6리에 있으며, 진산(鎭山)이다. 이규보(李奎報)의 기(記)에 ‘전주에 건지산이 있는데, 수목이 울창하여 주(州)의 웅진(雄鎭)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전주부 산천에 실린 글이다.
푸른 나무숲이 우거진 숲길을 세상의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고 걸어가면 어찌 그리도 마음이 한가로운지, 천천히 휘돌아가다 묘지석도 없는 무덤에 이르면 전주가 한 눈에 들어온다.
자주 ‘온전한 고장’이라고 부르는 전주에 터를 잡고 산지,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왜 나는 전주를 그처럼 좋아하는 것일까? 이유는 자명하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고자 하건 반나절이면 갈 수가 있고, 역사적 유물이 많으면서 문화적 풍토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고덕산, 모악산, 황방산으로 둘러싸인 전주를 그윽하게 바라보다가 숲길 사이를 걸어가면 조경단에 이른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조상인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공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항상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고개를 내밀고 보아야 한다. 조경단을 돌아 산길을 휘돌아 가면 울창한 편백나무 숲이 나타난다. 바로 그 앞은 전주 시민이 모여서 운동을 즐기는 체련공원이다.
장성의 편백나무 숲과 같이 울창한 편백나무 숲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아니 육신까지 다 내려놓고 나무에 기댄다. 그 때 문득 떠오르는 시가 괴테의 ‘나그네의 밤 노래’라는 시다.
“산봉우리마다 깃든, 고요, 미풍 한 점 없는 나뭇가지들, 여린 숨결 하나, 숲속 새들도 노래를 그쳤다. 기다리라, 그대 또한, 곧 쉬게 되리니.”
지친 몸과 마음이 저절로 상쾌해지고, 새로운 생각이 물씬 물씬 피어오르는 길이 바로 건지산길이다. 그 길을 걷다가 보면 〈혼불〉의 한 구절처럼 저기 저 만큼에서 누군가 지친 다리 이끌며 다가오는 사람 있지 않을까?
“인연이 그런 것이란다. 억지로는 안 되어 아무리 애가 타도 끄집어 올 수 없고, 아무리 서둘러서 다른 데로 가려 해도 달아날 수 없고, 지금 너에게로 누가 먼 길 오고 있을 것이다. 와서는 다리 아프다고 주저앉겠지, 물 한 모금 달라고.”
문화사학자·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