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굴을 설명하는 말로 ‘페르소나’가 있다.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쓴 인격’이다. 정신분석가 ‘김상준’은 말한다.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려면 남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고 남과 자신을 맺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타협이 있어야 하는데 그 산물이 페르소나, 즉 가면이다. 이것은 자신의 진짜 모습은 아니며, 사회에서 만들어진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시대가 바뀌거나 문화가 다르면 그 모습도 달라질 수 있다’라고.
‘짐 케리’가 주연한 영화 〈마스크〉는 가면을 쓰는 이유를 보다 현실적으로 풀이해 준다. ‘숨겨진 욕망인 본능적 충동은 억압받고 있어서 사회적으로 용납 받을 수 있는 형태로 표출하는 것’이라고. 여기서 영화는 ‘다 같이 쓰는 가면’이 있는가 하면 ‘나만 쓰는 가면’이 따로 있는데, 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든가 맹목적으로 쓰게 되면 큰 낭패를 볼 것이라고 경고한다.
〈나의 첫 번째 장례식〉이란 영화를 이런 관점에서 봤다. 원제는 〈Vijay and I〉, 즉 ‘비제이’라는 다른 나를 진짜 나와 비교해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내용을 희화화하여 포스터를 달았다. 제목 속에 내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또 두 번째, 세 번째 장례식이 계속될 수 있음이 암시되고 있어 재미있다.
영화는 방송국에서 ‘운 나쁜 토끼’라는 이름으로 항상 녹색 토끼 인형 옷을 입고 연기하는 ‘윌 와일더’(모리츠 블라이브 트로이 분)의 삶을 조명한다. 40세 생일, 녹화 중 PD의 반복되는 지적에 흥분한 윌은 토끼 인형 복장을 한 채로 방송국을 뛰쳐나온다. 주유소에서 자동차까지 도난당하고, 단짝인 ‘라드’(대니 푸디 분)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 차가 밤에 연쇄 충돌사고로 전소하였다는 것이다. 윌은 현장에서 한줌의 재가 되었다고 방송은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졸지에 죽은 사람이 되어버린 윌. 가족이 놀랠까 봐 집으로 전화하다 말고 갑자기 생각을 바꾼다. 자신의 죽음을 두고 세상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진 것이다. 전문가인 라드의 도움을 받아 인도인으로 변장한다. 은행가이면서 윌의 절친한 친구 ‘비제이’로 변신하는 것이다. 장례식에 참석한다.
장례식은 그가 아끼던 유품을 매장하면서 시작된다.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데, 자신의 에이전트가 나선다. “수많은 아이의 친구이자 사랑스러운 아내의 남편, 어여쁜 딸의 아버지, 그리고 우리 모두의 친구가 영면했다.” 조금 뒤 비제이에게 마이크가 넘어온다. 사양하던 그는 “우리 시크교에서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가는 다리입니다.”라며 점잖을 떤다. 아내 ‘줄리아’(패트리시아 아퀘트 분)가 머리를 조아린다.
사단은 윌의 집 추모회에서 난다. 옛 애인을 자처하는 한 여인이 비제이를 향해 쏘아 붙인다. “당신은 윌이 대단한 존재인 줄 아는 모양인데 전혀! 덩치만 컸지 완전히 유치하고 이기적이었죠. 불만투성이에 자기밖에 모르는 루저 라고요.” 다시 나타난 에이전트는 “세상사람 모두가 운 나쁜 토끼로만 기억한다.”라며 다른 배역이 적절치 않았다고 말한다. 장인 장모는 은행가인 비제이에게 딸의 비자금 운영방법을 상의한다.
모란꽃을 들고 가 아내를 유혹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얼마나 됐다고 아내는 비제이에게 잠자리까지 허락한다. 심지어 침대 위에서 “그는 방송국 토끼일 뿐 아니라 잠자리에서도 토끼였어요.”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자신이 쓰고 있던 토끼 인형만 답답하게 여겼던 윌, 방송국만 벗어나면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최악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습관대로 양말을 털다가 아내에게 정체가 탄로 나고, 따지려 드는 줄리아에게 황급히 말한다. “이제 윌은 없어!” 줄리아가 말한다. “비제이는 너무 품위 있고 유혹적이었어요.”
잘 나가는 식당 사장으로 변모한 인도인 비제이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씁쓸한 느낌 뒤로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윌의 정체성과 다음 장례식에 대한 우려가 그것이다.
‘죽어야 산다. 버려야 산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본질까지 버려서야 되겠는가? 그나저나 가면을 어찌해야 하나. 김상준은 말한다. 잘못된 가면을 벗는 방법은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지금 이것이 누구 것인지 확인하는 습관이라고.’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