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지역별 유적지와 기념사업 - 경상도 지역(중)] 경북 '동학' 창도한 지역임에도 보수성 짙어 사업 미약

19~20세기 집권층 거주해 상대적 거부감 많아 '전봉준 중심 전라도 반란사건'으로 왜곡되기도

▲ 경북 문경 소야리. 1880년대 중반부터 접주 최맹순이 경상도 북부 지역에 동학을 포교한 근거지며, 농민군을 규합했던 곳. 혁명 당시는 예천군에 속했다.

경북지역에서 백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한 단체는 상주동학농민혁명백주년기념사업회였다.상주기념사업회는 1993년 12월 18일 준비모임을 시작으로 발기인대회 등을 거쳐서 1994년 4월 2일 창립되었다. 창립 후 상주기념사업회는 6월 13일 ‘궁궁을을’(상주문화회관 대공연장)이라는 주제의 연극공연을 펼쳤고, 7월 7일 상주문화회관 전시실에서 ‘녹두꽃 떨어진 그 후’라는 주제로 그림 전시회도 열었다. 10월에는 22~23일 양일간 ‘가자! 장주읍성으로, 자주 평화의 세상을 향하여’라는 주제 아래 상주지역 동학농민군 합동 위령제 및 유적지 답사를 추진했으며, ‘상주 동학농민혁명 기념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2007년부터 연례사업으로 추진하던 ‘동학농민혁명 전국 기념대회’를 충남 공주, 서울, 충남 태안, 전남 장흥에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특수법인으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출범한 후인 2010년도에 그 다섯 번째 전국기념대회를 상주시에서 개최하였다. 한편, 예천에서는 1996년 예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창립되어 ‘동학농민군지도자전기항의사기념비’를 세웠고, 1999년에는 보수집강소 민보군에 의해 농민군이 생매장 당한 장소에 위령비를 세우기도 했다.

 

△전봉준 중심의 전라도, 불온한 반란사건으로 축소·왜곡

 

그러나 경북지역에서 추진된 기념사업은 같은 시기에 서울, 경기 그리고 충청도와 전라도 등지에서 펼쳐진 기념사업에 비해 다소 미약했다. 타 지역에 비해 경북지역에서 추진된 백주년 기념사업이 다소 미약할 수밖에 없었던 주된 요인은 한국근현대사의 극심한 굴절과 부침으로 이 사건이 전봉준 중심의 전라도 사건 혹은 불온한 반란사건으로 왜곡·축소되어온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경북 상주.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조선에 진주한 일본군의 병참소가 설치됐던 곳.

동학이 창도된 고장, 동학의 모태였던 경북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이 불출되지 않고 전라도에서 분출되어 충청도 등지에서 거세게 타올랐던 1894년의 상황과 다른 지역에 비해 경북지역에서 백주년 기념사업이 다소 미약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일정한 사회역사적 배경을 찾을 수 있다. 그 사회역사적 배경으로는, 19세기 당시 경북지역은 조선왕조체제에서 권력의 핵심부를 이룬 안동김씨 본향으로 두터운 보수양반층과 유림세력에 의해 보수적 향토지배질서가 강력하게 구축되어 있었다는 점과 20세기 한국현대사에서 권력의 핵심부를 차지한 이른바 TK지역이라는 경북지역이 갖고 있는 지역적 특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19세기 때나 20세기 때나 경북지역은 집권층의 위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수적 향토지배질서가 견고했고, 이런 사정으로 인해 ‘동학’을 창도한 고장이면서도 그 힘의 분출이 타 지역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백주년을 전후한 시기에도 경북지역은 집권층의 위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수적 향토지배질서가 견고하여 타 지역에 비해 기념사업이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사회역사적 배경으로 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북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의 성과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먼저 역사적으로 형성된 경북지역의 정치적 특수성을 잘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북지역의 정치적 특수성을 섬세하게 파악하고 이를 면밀하게 분석한 것을 바탕으로 지역주민의 거부감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념사업 내용과 형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에 따른 대안의 하나로 전라도, 전봉준 중심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인식을 새롭게 재정립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예컨대 그동안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인식이 반외세, 반봉건 중심이었는데 이것을 조선 혹은 동양적 근대민주정치 추구라는 측면으로 외연을 확장하고, 그 깊이를 더해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경북지역 주민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새로운 역사인식의 틀을 모색해나가는 것과 함께 우선 당장에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반란사건으로 치부되던 동학농민혁명이 2004년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에서 의원입법을 통해 명실상부하게 복권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사업에 힘을 기울일 필요성도 있다.

 

△반외세 다루는 기념사업 필요

▲ 경북 김천 옛 장터. 동학농민혁명 당시 김천(김산) 지역 농민군 도소가 설치되었던 곳이자, 농민군 지도자들이 처형된 곳.

또 다른 대안으로 반외세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기념사업을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지난 시기 반외세, 반봉건 항쟁이라는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이 추진되었다. 그런데 그동안 전국 각지에서 추진된 기념사업이나 기념시설물 건립·설치 현황을 살펴보면 정작 반외세와 연관된 기념사업 혹은 기념시설물 건립·설치 등이 매우 미흡하거나 아예 없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경남 하동군 고성당산에 건립된 ‘고성산동학혁명군위령탑’ 비문에 고성당산이 대일군전적지(對日軍戰迹地)라는 것이 명기되어 있으나 반외세 혹은 반일에 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현상은 그동안 추진된 기념사업에서 반외세 문제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본격적으로 반외세 문제를 다루고 있다기보다는 다분히 구호적인 차원에서 접근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본군 병참소 등의 유적지가 있는 경북지역에서 반외세 문제를 핵심으로 ‘동학농민혁명 반외세 역사공원’ 등의 건립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북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 반외세 역사공원’ 조성사업 기획·추진을 통해 갑오년 당시 일본군이 조선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동학농민군을 상대로 저질렀던 반인도적인 범죄행위인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화형(火刑) 집행 장면 등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여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역사공원을 조성한다면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의 새로운 전형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회구성원간의 계급적 문제보다는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 혹은 민족적인 문제를 중심에 두고 기념사업을 추진한다면 상대적으로 완고한 경북지역의 보수적인 향토정서를 극복하는 것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등 도발적 행보로 동북아시아 정치정세가 급속도로 달구어지고 있는 21세기 초입 현재의 시대상황과도 부합한 시의적절한 기념사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병학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