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구도심 36년된 카페 '빈센트 반 고흐'] 커피향 흐르는 문화감성 공간

카페보다 1살 어린 사장 수차례 폐업 위기 겪어 / 강연·공연·영화제 주최, 향후 20년간 유지 목표

▲ 카페 ‘빈센트 반 고흐’에서 진행된 문화행사에 참여한 시민들.

도시가 발전하고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다보면 새로운 기능을 가진 공간이 형성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구도심을 형성한다. 전주시 중앙동은 1990년대까지 도시의 심장부로 상업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현재는 그 심장이 도청 인근 서부신시가지로 이전되면서 유동인구가 줄고 한 달이 멀다하고 업종이 바뀌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30여년 한 자리를 진득하게 지키는 공간이 있어 그곳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카페 ‘빈센트 반 고흐’. 다방문화가 주류였던 1990년대, 다방과는 차별된 음악카페로 다양한 연령층의 마니아가 있던 곳. 연인을 위한 카페라기보다 혼자 사색하고 음악듣고 책보는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한 사람의 발걸음이 잦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입구에는 ‘빈센트 반 고흐(1979.3.30.~)’이라고 씌여있다. 벌써 36년이다.

 

△제제와 뽀르뚜까의 이야기

 

30년 넘게 운영돼 눅눅하고 습해서 쾌쾌묵은 냄새가 나진 않을지 걱정한 것과는 다르게 말끔하고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카운터, 소파, 책장 등 내부도 눈에 띄게 달라진 건 딱히 없었다. 최신 기계인 제습기가 몇 대 놓여있고 그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20대 봤던 예전 그 사장님이 아닌 30대 청년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는 것 외에는 말이다.

 

현재 이 곳을 운영하는 서보성 대표(35)는 이 카페보다 한 살 이나 어리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이곳을 알았고 그때 20여년간 운영하고 계셨던 사장님을 뵙게 됐죠. 20대였던 저에게 사장님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서 주인공 ‘제제’를 이해하고 사랑했던 ‘뽀르뚜까’아저씨같은 분이셨어요. 힘들 때 얘기하고 우울할 때 찾아가 위로와 도움을 받았죠.”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가 들어오면서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영세 카페들이 폐업을 하고 상권이 신시가지로 이동하면서 빈센트 반 고흐 카페도 문을 닫아야 되는 위기를 몇 차례 겪었다. 첫 번째 운영자 이후 단골을 중심으로 가업을 이어가듯 몇 번 대표가 바뀌었고 서 대표가 서른되던 해 이 곳을 인수받아 6번째 주인으로 올해 6년째 운영하고 있다.

 

“6년 전 운영이 너무 힘들어 문닫기 직전에 들어왔죠. 30년 넘게 힘든 시기를 겪으며 유지한 카페만의 이야기가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어요. 여러 사람들, 심지어 뽀르뚜까 사장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운영을 자처했죠.”

 

△세대마다 같은 취향은 존재한다

 

빈센트 반 고흐를 즐겨찾는 주류는 20대 추억을 간직한 40~50대가 아니라 의외로 20~30대다.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인 것 같아요. 15년 전 사색과 힐링의 목적으로 조용하고 음악이 잔잔히 흘렀던 이 곳을 찾았던 것처럼 세월이 흘러도 나이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같은 취향은 존재하죠.”

 

의도적으로 연출하지 않아도 세월에서 묻어나는 빈티지가 36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멋스럽고 점잖게 드러나고 있었다.

 

“수익이 하루 2만 원일 때도 있었고 지금도 썩 잘되진 않아요. 하지만 20대 제제가 뽀르뚜까 아저씨를 만나 위로받고 성장한 것처럼 지금 20대에게 좋은 인연과 만남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앞으로 20년간 카페가 유지되는 것이 제 목표예요.”

 

△문화공간으로 성장을 꿈꾸다

▲ 카페 운영자 서보성 대표가 연기자 조달환 씨를 강사로 초청한 강연에 앞서 소개를 하고 있다.

향후 20년 뒤까지 생존을 위한 해답은 운영에서만 찾을 수 없었다. 음악카페를 문화카페로 성장시키기 위한 서 대표의 노력은 지난 2010년부터 시작됐다. 현재 ‘解(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방에’, ‘영화제’ 등의 이름으로 강연, 공연, 영화행사를 청년들과 기획·주최하고 있다. 서 대표는 행사라고 하기에는 조촐하다고 머쓱해하지만 20~50명이 참여한다.

 

어쿠스틱 음악을 주로 하는 인디밴드 공연을 비롯해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는 빈센트 영화제를 독립적으로 진행하면서 대형 영화관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성영화를 상영한다.

 

내부 공간이 작아 행사를 할 때마다 소파를 이리 저리 옮기고 때로는 바깥으로 다 꺼내 작은 원형의자를 빌려놓기도 한다. 아직은 그럴싸한 문화행사를 하기에는 열정만 있지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 스크린 대신 천으로 가림막을 하고 빔프로젝트를 빌리느라 동분서주한다.

 

“매번 찾아주시는 손님들 덕분에 힘이 나죠. 이제는 참여자, 주최자 구분없이 같이 준비하고 진행하고 홍보해요.”

 

특히 지난해 시작한 강연 ‘解바라기’는 인기가 가장 많다. 지난 5월 공정여행가 한영준 씨를 시작으로 안도현 시인, 북아티스트 김진섭 씨,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이사, 르포작가 박영희 씨, 연기자 조달환 씨 등이 찾았다. 지난 8월에는 TV프로그램 ‘무한도전’으로 유명세를 탄 디렉터 이신혁 씨의 ‘일상에 양념치기’ 강의가 성황을 이뤘다.

 

걸죽한 이력의 강사를 어떻게 섭외하고 비용처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안도현 시인은 카페와의 인연으로 모셨고 제가 아는 분, 아니면 20대 청춘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섭외하기도 해요.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고 사연을 말씀드리면 또 흔쾌히 와주셔서 그게 감사할 뿐이죠.”

 

△문화, 사람, 나눔

 

인터뷰를 마치며 단어 몇 가지가 떠오른다. 문화, 사람, 나눔. 이 순환이 지속되는 한 카페 빈센트 반 고흐는 전주를 대표하는 문화카페로 그 이름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앞으로 한 15년 남았네요. 제가 카페지기를 처음 시작할 때 20년간 유지됐으면 했거든요. 잘 만들어 놓은 다음에는 또 다른 세대의 카페지기에게 물려줘야죠.”

 

서 대표는 “그간 쏟았던 5년여의 시간은 그동안 잠잠했던 카페의 먼지를 떨고 존재감을 알리는 시기였다면 앞으로의 10여년은 자기 색깔로 이 공간을 꾸려 보려 한다”는 소박한 계획을 말한다.

▲ 임진아 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