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부 '표해록' 세계 3대 중국견문록
거기서부터 최부 일행은 중국의 내륙 운하를 따라 베이징까지 이른 다음 압록강을 거쳐 조선으로 다시 돌아온다. 표류한 지 넉 달 보름만이다. 왕명을 받들어 그간의 일을 소상히 기록해 바쳤는데 이것이 바로 〈표해록〉이다. 이 책은 엔닌의 〈입당구법순례기〉(9세기),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13세기)과 함께 세계3대 중국견문록으로 손꼽힌다. 15세기 중국의 저간의 사정을 이토록 정밀하게 서술한 기록은 중국 내부에서도 찾기 어렵다. 그는 마르코폴로처럼 구술의 방식을 택해 중국에 대해 과장하지 않았으며 일본 승려 엔닌처럼 자신의 신분을 감추지도 않았다. 조선의 엘리트이자 역사학자이기도 했던 최부는 그 험한 여정 속에서도 ‘조선의 관리’로서 기품과 정직성을 잃지 않았다.
〈표해록〉의 역사적 가치는 크다. 고난극복의 스토리텔링 구조에 공익의 리더십이 강해서 오늘의 답답한 현실에도 호소력이 강하다. 조선의 관리 최부는 어떠한 난관에 닥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빗물 받을 그릇조차 없어 오줌을 받아 식수로 마셔야 했고, 금은을 요구하는 해적이 어깨에 작두를 내리치며 겁박해도 “몸뚱이를 뭉개고 뼈를 부순다고 해서 금은을 얻을 수 있겠는가”며 물러서지 않았다. 해안에 표착해서는 왜구로 오인 받아 모진 고난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난파선 리더로서의 지혜와 기품을 잃지 않았다. 가장 귀감이 되는 것은 함께 타고 간 42명 전원과 동반 귀국했다는 점이다. 136일간 파란만장한 고난의 여정 동안 그는 어찌하여 단 한 사람도 잃지 않았던가.
참된 지도자는 간난신고의 과정에서 탄생한다. 이순신이 그러했고 그보다 100년 전엔 최부가 바로 지도자의 전범이었다. 아쉽다. 위대한 기록의 나라 조선의 선조들은 그러했는데 오늘 이 땅엔 참된 지도자가 귀하다. 불신과 배타의 논리가 유령처럼 어슬렁거리고 아프고 심란한 국민 모두의 마음 함께 껴안으려 하지 않는다.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의 순간을 수도 없이 맞으면서 최부는 일행들에게 당부한다. “우리는 생사고락을 같이하여 골육지친과 다름없으니, 지금부터 서로 돕는다면 몸을 보전하여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려움을 당하면 같이 구하고, 한 그릇의 밥을 얻으면 같이 나누어 먹는다. 병이 생기면 같이 돌보아 한 사람이라도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할 것이다.”
고난 극복한 참된 지도자 모습 담겨
최부는 어떻게 모두를 살렸던가. 그는 매순간마다 문제해결을 주도했다. 공동체정신을 강조했고 비전과 희망을 보여주었다. 한 사람이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당부는 왕명보다 지엄했다. 그리하여 그에겐 ‘존경’이라는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나는 그가 ‘존경’의 힘으로 42명 전원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존경’ 앞에서는 낙심도 원망도 미움도 다 사라진다. 생명의 열망과 내일의 희망이 새로 생겨난다. 이런 존경의 힘이 우리사회에 필요하다. 조롱이 비판적 지성으로 위장되는 사회에 존경을 새롭게 초대해야 한다. 최부가 진정 나라의 공복(公僕) 아닌가. 좋은 나라 멀리에서 찾을 필요 없다. 공무원이 존경받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