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한국 연극계의 화제작으로 주목받은 작품이 있다. 지난 9월 21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됐던 중진작가 이강백의 ‘즐거운 복희’다. 외진 호숫가 펜션에 살고 있는 여섯 명 주인이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벌이는 마케팅의 실체를 은유와 상징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 허구와 진실의 경계를 통해 우리시대의 민낯을 들춰낸다.
이 작품은 시대를 반영하는 주제로도 그렇고, 작품의 완결성이나 배우들의 연기력, 무대공간의 특성으로 평단과 언론의 호평을 부족하지 않게 받았다. 거장의 신작다운 결실이다.
사실 이 작품은 남산예술센터의 2014 공동제작 작품 공모 당선작이다. 대개의 공모전이 신인이나 젊은 작가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문화적 환경으로 볼 때 중진, 그것도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이 응모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공모에서 떨어지면 감내해야 할 부담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이강백도 이런 부담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던 듯하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공모전에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전주 출신인 이강백은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등단작 〈다섯〉을 공연했던 극장이 바로 남산예술센터다. 그는 자신이 쓴 희곡이 무대에서 연극으로 공연되는 것을 처음 봤던 그때, 평생 연극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 했다. 지난해 오랫동안 몸담았던 서울예대에서 정년퇴임하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도 그때의 마음을 회복하고 싶다는 것이었단다. 그의 공모전 투고는 그런 소망으로 이뤄진 듯하다.
7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극작가로 살아오면서 한국 연극을 성장시켜온 그는 우화와 비유가 주를 이루는 수많은 대표작으로 ‘알레고리의 대가’라는 별칭을 얻었다. 강한 것과 약한 것,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대립 속에서 현실에서 소외되고 잊혀지는 것들을 자신만의 특별한 형식으로 담아온 그의 족적은 빛난다.
지난 주말, 공연 막바지에 ‘즐거운 복희’를 보았다. 끝도 없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이 빚어내는 비극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선과 악, 허구와 진실의 경계다. 세월호의 비극이 여전히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지금, ‘즐거운 복희’가 던지는 시대적 메시지는 역시 울림이 컸다.
작가는 이 무대로 ‘다시 데뷔했다’고 했다던가. 그의 ‘새로운 시작’이 더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