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걱정을 품고 약 12시간의 비행 끝에 소피아 공항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우려는 도착과 동시에 현실로 다가왔다. 행사 주최자와 불가리아 친구 한 명이 마중을 나왔었는데 이들과 인사를 할 때부터 말문이 턱 막혀버린 것이다.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나의 입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그저 조용히 듣거나, 웃으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전체 8일간의 행사 중 3번째 날이 되었다. 그 날은 현지의 초등학교에 방문하여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종이접기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행사 참가자들은 저마다 몇 명의 아이들을 전담하여 종이학 접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나 역시 대니스라는 남자 아이를 맡아 종이접기를 시작하였다.
나는 우선 몸을 낮춰 그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다음 순서에 따라 조금씩 종이학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기내에서 익힌 몇 마디 불가리아 인사말과 감사와 칭찬의 표현을 해주었다. 나의 발음이 이상했는지 대니스는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이따금 서로를 마주 보며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대화 없이 가장 먼저 종이학 한 마리를 완성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하이파이브 했다. 이 후 우리는 또 다시 아무런 말없이 내리 3마리의 종이학을 접었다.
그렇게 평범한 수업이 끝나고 모두가 헤어질 무렵, 하교하던 대니스가 갑자기 발길을 돌려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곤 함께 접었던 종이학과 연필을 내밀면서 나의 이름을 적어달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에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다른 수업을 위해 다음날 학교를 찾았을 때 대니스는 내게 조그마한 불가리아 기념품을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다시 나를 찾아와 내 이름을 부르며, 어디서 배웠는지 영어로 같이 사진을 찍자고 제안하였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함께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었다. 서로의 진심만으로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다른 친구들을 대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분명히 평소와 다름없이 대화는 잘 되지 않지만 내가먼저 진심을 다해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상대방도 나를 배려해 주었다.
심지어는 불가리아 친구와 단둘이 깊은 대화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대니스를 통해 진심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운 덕분이었다.
진심으로 소통하기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처음의 나처럼 외국인이나 혹은 그들의 부모님, 친구, 연인 등 크고 작은 인간관계 속에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조금만 용기를 내어,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거짓 없는 진심을 보여준다면 상대가 누구든 긴밀히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심’이란 전 세계인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만능열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