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석 국회의원(새정치민주연합·익산 갑)이 지난달 26일 원광대에서 열린 ‘고도 익산의 정립과 박물관의 기능’ 세미나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립익산박물관 건립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전북도와 익산시는 국립익산박물관 건립을 위해 상당 기간 공을 들여왔다.
특히 지난 2009년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 해체과정에서 발굴된 ‘사리장엄’은 왕궁리 유적과 쌍릉, 서동요 등의 문화자원을 보유한 익산에 국립박물관이 들어서야 한다는 여론에 불을 지폈다.
익산은 옛 금마저로, 백제 뿐 아니라 마한의 중심지였다는 자부심이 깃든 지역이다.
제7차 교육과정까지의 국사 교과서에는 백제의 수도가 서울·공주·부여로만 서술돼 ‘수도 익산’에 대한 교육을 받은 타지인은 거의 없고, 도민들 역시 확실한 근거는 모르는 실정이다. 국보 제289호 왕궁리 오층석탑이 있는 왕궁면 역시 약 30년 전만 해도 왕궁(王宮)이라는 지명만 이어져 내려온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전북도는 익산이 백제와 마한의 수도였다는 근거(사료와 유물)를 1일 공개했다.
중국 육조시대(서기 229~589년)에 쓰여 일본 교토 청련원(靑蓮院)이라는 절에서 발견, 현재 소장하고 있는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는 ‘백제 무광왕(무왕)이 지모밀지(왕궁리)로 천도해 새로이 정사를 경영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백제가 망하고 약 500년 뒤에 쓰인 삼국사기보다 600~900년 정도 먼저 쓰인 것이다. 또 왕궁리 유적에서 발굴된 기와에는 수부(首府)라는 인장이 찍혀 있다. 마한과 관련해서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고조선 준왕이 남천해 마한을 개국한 한지(韓地)가 금마(익산)라고 서술됐다.
이와 같은 근거는 백제사에 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국내 사료 중 하나로 1145년 유학자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는 불교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신라 위주로 서술돼, 동양 최대 규모의 사찰 미륵사와 41년을 재위한 백제 무왕 대(代) 수도였던 익산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정부가 선정한 ‘4대 고도’ 중 국립박물관이 없는 곳은 익산이 유일하다. 현재 국립박물관은 광주와 나주, 김해와 진주 등 전국 13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