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위안부'라 하지 말자
군내성노예제도(military sexual slavery)라는 용어는 UN과 국제사회에서 성노예(military sex slavery)와 함께 사용한다. 고노 관방장관은 2차대전 중 일본군에 의해 설치된 위안소는 당시 군(軍)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ㆍ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관여하였다고 발표했다. 1996년 UN인권위원회는 이 제도를 전시 하 군대성노예제 (military sexual slavery in wartime)로 규정했다.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도 ‘위안부’라고 우회적으로 부르는 대신 ‘강제 성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게 적절하다고 권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는 ‘군대성노예제도’라는 용어보다 ‘일본군위안부’라는 용어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위안부’라는 용어가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기에 적합 하지 않지만 동시에 일제가 위안부라는 용어를 만들어가며 제도화했던 당대의 특수한 분위기를 전달해 준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와 “군대성노예제도 피해자들이 자신을 ‘성노예’로 부르는 데에 정신적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불명확한 근거로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부터 시행된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에서도 ‘일본군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대다수의 언론도 이 용어를 고수하는 슬픈 현실에서 일본에서는 군대성노예제도 관련 보도를 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를 해임하라는 우익들의 협박에 맞선 일본 학자, 법률가, 언론인 등 400여 명이 참여해 우에무라 기자가 강사로 있는 호쿠세이가쿠대학을 지지하는 지식인 모임이 출범했다. 이들은 우익의 협박과 폭력으로부터 학문의 자유를 지키기로 선언을 한 것이다. 역사를 덮어버리려는 일본 정부의 시도로부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을 통해 일본이 주변국가와 자국민 에게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학교교육 등을 통해 역사를 바르게 바라보려는 일본 내 작은 움직임 중의 하나이다.
식민지 근대화론 주장은 한심한 일
아베 총리등 일본 기관장들과 일본 극우들의 망언이 이어지는 와중에 한국에서도 대한민국의 적통성은 상해임시정부가 아니라는 움직임과 김구선생을 김일성의 꼭두각시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했다고 치부하며 반공단체인 서북청년단원 안두희씨가 김구를 처단한 것은 의거라는 망언들이 나오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점점 힘을 더해가며 친일미화를 넘어서 독재까지 미화하려는 한심스런 현실에서 잘못을 감추거나 회피하지 않고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려는 움직임이 더욱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