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의 대중화를 위해 가객을 자처하는 국립국악원 정극단 문현 단원(58). 그는 이번 소리축제에서 전통적인 시조창과 함께 동시대성을 반영하는 창작 정가, 타 장르와 접목한 노래를 들려준다. 이런 행보에는 페인트 연구원에서 국악도로 변신한 그의 삶이 겹쳐진다. 그를 통해 곱씹을수록 빠져든다는 정가의 매력을 전주향교에서 만나보자.(11일 오후 5시)
문현 단원은 조선시대 선비가 부르던 전통 시조창에 대한 소외감을 극복하고 대중과 가까이 하려는 몸짓을 지속하고 있다. 그는 시조(정가)창으로 기악곡 연주자들이 하는 퓨전풍의 창작 시조창곡을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지난 2005년 5월 ‘문현의 창작노래 시조, 도시를 걷다’와 2009년 10월 ‘문현의 창작노래Ⅱ 슬로우 시티(Slow City)’ 등 2장의 솔로 앨범을 냈다. 첫 앨범은 사재를 털어 모든 트랙을 창작곡으로 만들었다. 두 번째 앨범을 통해서는 시조창으로 대중적인 퓨전 음반을 만든 최초의 음악가가 됐다.
올해 소리축제에서는 이 두 장의 음반에 담긴 퓨전 곡을 중심으로 창작 시조창곡을 선보인다. 더불어 전통 시조창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기 위한 1~2곡 넣었다.
정가의 마성(魔性)에 대해 문 단원은 “느린 음악은 처음에는 그 맛을 알기가 참 쉽지 않지만 시간이 걸려 매력을 느끼면 마치 중독처럼 손을 뗄 수가 없다”며 “오래 씹을수록 은근한 단맛이 나는, 주식인 밥의 미감과 상통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리축제와 올해 첫 인연이다. 그동안 초청받지 못해 늘 마음 한 편에 아쉬움과 소외감이 있었다는 토로다.
문 단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래이자 정형시인 시조가 이리 푸대접받고 있는 현실에서 한편으로는 ‘내가 공연계에서 아직 존재감이 없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나’라는 상념이 있었다”고 고백하면서도 “그래서 이번 공연이 더욱 소중하고 긴장감 속에서도 잘 해야겠다는 마음과 함께 신이 난다”고 밝혔다.
그가 스스로를 수식하는 말은 가객(歌客)이다. 어릴 적 음악교과서에 수록된 곡을 담은 LP음반을 듣고 자란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노래 부르기를 즐겼고 기악보다는 성악에 관심이 갔다.
그는 “실제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로서 가창(가객)이 더 매력이 크다”고 말했다.
문 단원을 따라다니는 말은 그 외도 많다. 국악계 시조 1호 박사와 화학공학도에서 국악도로 변신도 이색적이다.
그는 서울 출신으로 성균관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2년간 페인트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대입 뒤 교내 방송국에 들어가 시간만 나면 팝송과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미술에 조예가 있던 친구와 인사동 화랑가를 다니며 예술에 눈을 떴다. 당시 청계천 거리를 쏘다니며 해적판 음반을 사 모으기도 했다. 이런 취미가 시조창을 대중음악으로 만들려는 마음가짐의 바탕이 됐다.
여기에 연극, 강령 탈춤에 빠지면서 자신의 끼를 발견했다. 페인트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에도 취미활동으로 국악을 놓지 않았다. 신문 광고를 보고 찾아 간 시조창 강습이 인연이 돼 정가에 입문했다.
하지만 국악도가 된 것은 우연이었다. 어느날 추계예술대 국악과 편입시험 공고문을 발견한 뒤 시험을 봤고 합격통지를 받았다. 그는 바로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국악 전공 학생이 됐다. 이후 지난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보유자 이양교) 장학전수생에서 1991년 이수자가 됐다.
그는 “이런 배경에는 한 번 빠져든 길에는 어느 정도 뿌리를 뽑는 성격 탓이 컸다”며 “만일 민요나 판소리 강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면 그 쪽으로 나갔을지 모른다”고 귀띔했다.
그는 소리축제에서 시조창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무르익은 가을 저녁, 향교의 야외무대에서 잡념을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저의 노래를 감상하신다면 잔잔한 감동을 느끼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번 공연을 통해 전주에도 저의 팬이 생기길 소망하지만 다른 장르에 비해 소외돼 공연 무대가 상대적으로 적은 시조창의 매력을 발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문현 단원은 한양대 대학원에서 국악학 석사 학위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예술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1999년 제10회 서울국악대경연 정가 부문 장원, 2004년 KBS국악대상 가악 부문에서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