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 류정수 공학박사·토목기술자

교육의 다양성을 위해 만든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자사고)는 1년 예산을 30억 원 정도 지원하는 사립학교 100개를 자율형으로 만들어 매년 3000억 원을 절약해 이를 농어촌 학교에 1억 원씩 3000개를 지원할 수 있다는 경제 논리를 앞세웠다.

그래서 작은 학교가 아니고 학생이 많은 대형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바람에 고교 평준화의 근간을 흔들었고, 일반계 고등학교를 무력화시켰을 뿐 아니라 빈부 격차를 드러나게 했다. 이러한 여러 문제점들을 파악한 진보 교육감들은 자사고 재지정을 취소함으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4대강의 수질을 개선하겠다는 공사는 하천으로 유입되는 골짜기의 물과 시냇물을 깨끗하게 만들면 수질이 좋아진다는 기본을 무시하고, 하천에 보(堡)를 건설해 유속을 느리게 함으로 수질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수질 개선을 위해서는 이미 건설된 수리 시설물들을 철거하자는 사람들의 진의가 수질에 대한 염려인지, 아니면 자기와 주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미워 몽땅 부숴버리자는 것인지 그 속내를 잘 모르겠다.

거듭 말하지만 수질 개선을 위해서는 많은 돈을 들여 만든 시설물을 파괴하기보다는 상류에 있는 공장의 오·폐수, 가축 분뇨, 친환경 농산물 재배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고 중요하다. 자사고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자사고의 본질은 교육의 다양성이다. 이를 무시하고 전부 일반화한다면 그 또한 자사고를 만든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자사고를 취소하는데 전력을 쏟지 말고 일반 학교에 대한 지원과 대책을 강구하여 자사고를 능가하는 교육 정책을 펼친다면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자사고를 선택하는 학부형은 없을 것이다. 또한 자사고의 입학 전형을 보완하면 자사고를 가지 않게 된다.

본질을 무시한 논의는 사회적 갈등을 일으켜 분열을 조장하고 국민과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왜 발생했는지를 철저히 조사하고 그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는데 수사권, 조사권을 따지며 위법성 등을 말한다면 그것은 본질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또 다시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 통일의 본질은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다. 경제 논리에 의해 대박 이론이 먼저이거나 북한 정권의 괴멸이 앞선다면 통일의 길은 요원하게 될 것이다. 교육의 다양성을 경제 논리로 접근해 자사고를 만든 사람들, 그것을 전부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론자들, 많은 돈을 들여 건설한 시설물을 제거하자는 사람들, 세월호를 해상 교통사고로 폄하하는 사람들, 모두가 한 쪽으로 치우친 사람들이다.

본질이 변질되어 국민을 속이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입으로는 국민을 위하는 척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이나 자기주장을 관철하고 싶은 이기심 때문이다. 이제는 시민 의식이 성숙하여 여와 야, 진보와 보수, 네 편과 내 편이 아니고 무엇이 본질인지를 깨닫고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