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주한옥마을인가?

▲ 조봉업 전주시 부시장

한국의 어떤 도시가 이처럼 고유함과 예스러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활기를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을까. 고즈넉한 분위기의 태조로와 은행로에 젊은이들과 가족단위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인적마저 보기 힘들던 전주한옥마을은 개발 10여 년 만에 연간 500만 명이 찾아오는 최고의 관광지로 바뀌는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슬로시티’,‘유네스코음식창의도시’, ‘인문도시’와 같은 대외적인 평가와 위상도 단번에 달라졌다.

한옥마을을 통해 ‘오래된 도시, 전주’도 새로운 생명력과 활기를 얻고 있다. 조금은 고답적인 이미지에 갇혀 있었던 전주가 ‘한옥마을’을 통해‘오래된 미래’로 주목받으며 창조적인 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한옥마을의 성공을 보며 전문가들은 도시재생의 대표적 사례로 꼽길 주저하지 않고, 자치단체들은 저마다 전주한옥마을을 벤치마킹하며 제2, 제3의 한옥마을 조성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전국각지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한옥마을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주한옥마을의 인기가 사그라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우려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전주한옥마을에는 인위적으로 조성되어 박제된 영화세트장 같은 타 지역의 한옥마을에선 찾아볼 수 없는‘자연스러움’과 ‘역사성’이 생생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이야말로 여타 지역과 비교할 수 없는 전주만의 독특하고 차별화된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실, 솜씨 좋은 목수가 만든 매끈하고 화려한 한옥에 비하면 전주의 한옥들은 질박하고 수수하다. 하지만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전주의 한옥은 저마다 풍부한 이야기와 역사를 품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 소박하고 따뜻한 풍경과 사연들은 물론이고 후백제, 조선왕조, 동학혁명 등 굵직한 역사의 흔적도 한옥마을의 가치를 높인다. 세월의 더께가 쌓인 전주한옥마을의 기와와 처마, 골목길 풍경, 시민들의 모습에는 전주의 풍속, 전주 사람들의 진짜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재와 생생히 교감하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이 공간을 과연 어떤 곳이 쉽게 모방할 수 있을까?

그런 차원에서 뉴욕이나 두바이처럼 좁은 땅덩이 위에 뾰족하게 세워진 빌딩 가득한 현대적 미감과는 대치되는 전주 한옥마을의 자연 친화적인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독보적이다. 음미하지 않으면 찾아낼 수 없는 순간들, 놓치고 마는 풍경들을 품고 지켜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작은 마을의 가치는 대단하고 소중한 것이다.

흔히들 갑자기 찾아오는 행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의 한옥마을이 누리는 갈채도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간 한옥마을을 위해 전주시민들이 쌓아온 노력과 정성이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에 다다른 결과라 생각한다. 급변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도 시민들이 우직하게 지키고 가꿔온 전주의 역사, 우리 문화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최근 한옥마을을 둘러싸고 빚어지는 상업화, 정체성, 주차난 등 여러 논란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 전주한옥마을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야말로 한옥마을을 지키고 가꿔 온 우리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