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0월 8일 월요일, 서독의 시사 주간지 〈데르 슈피겔〉 에는 〈팔렉스 62〉라고 명칭된 나토의 군사 훈련을 분석한 기사가 ‘제한된 방어력’ 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이는 서독의 국방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한 기사였다.
그러나 10월 19일 독일 연방 법원은 〈슈피겔〉의 편집자들에게 국가 기밀 누설죄와 공무원 매수 죄 혐의를 적용하며 영장을 발부하고 즉시 체포할 것을 명령했다. 영장이 발부된 이후 〈슈피겔〉의 저명한 언론인들은 모두 체포되었다.
당시 서독의 총리였던 콘라트 아데나워는 ‘반역 행위’라고 발언하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당시 서독의 국방부 장관이던 프란츠 요세프 슈트라우스는 그간 국방부의 스캔들을 몇 차례 폭로한 바 있는 〈슈피겔〉과 〈슈피겔〉의 사주 루돌프 아우크슈타인을 매장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믿었다.
하지만 〈슈피겔〉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것은 바로 서독 그 자체였다. 서독의 시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시민들은 명백한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하며 체포한 언론인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전 세계에서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이 그들을 지지했다. 결국 〈슈피겔〉의 언론인들은 석방되었고, 프란츠 슈트라우스와 콘라트 아데나워 또한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정부는 무너졌고,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슈피겔 사건〉이다.
결국 민주주의가 승리했고, 이후 독일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확실하게 보장되며 무려 2600여종의 신문이 발행되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슈피겔〉은 정확하고 공정한 비판과 보도를 통해서 세계 최고의 언론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독일은 국경 없는 회가 발표한 언론 자유 지수 (2013년)에서 13위를 차지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세계에서 언론 탄압이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로 발전했고, 세계 최고의 강대국 중 하나가 되었다.
보통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고, 고위직에 대한 비판이 거리낌 없는 나라일수록 정치적으로 선진국이라고 말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에도 꽤나 실망스럽다. 공식적으로 드러난 경우는 없지만, 언론 탄압으로 사료되는 수많은 사례들은 아직 대한민국이 진정한 정치적 선진국으로 들어서지는 못했음을 반증한다. 하나의 글이 역사를 바꾼다. 하나의 보도가 역사를 바꾼다. 언론은 우리를 더 가깝게 연결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사람들에게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리고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서 비판하며 잘못된 점을 개선하고 상황에 따른 올바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언론의 일차적인 목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언론이 자신에게 유리한 보도를 하도록 지시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자유롭게 함과 동시에 민중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행위인 것이다. 무슨 상황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그에 대한 대처도 할 수 없는 노예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합리화하며 비판 받지 않으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려는, 과거 노예를 소유하던 주인과 같은 심보인 것이다. 독일은 〈슈피겔 사건〉을 통해서 제국주의라는 이미지를 탈피하는데 성공했다.
정부가 언론을 탄압하는 국가는 제 아무리 민주주의라고 표방해도 민주주의라는 탈을 쓴 것뿐이다. 대한민국 또한 언론 탄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없다. 과연 진실이 중요한가? 국익이 중요한가?
적어도 훌륭한 저널리즘으로 불리는 〈디 차이트〉의 〈슈피겔 사건〉 당시 편집장 테오 좀머는 이렇게 말했다. “먼 훗날, 우리가 이번 사건을 회고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슈피겔 사건을 통해 하나의 정부를 잃었지만 용기 있는 민족을 얻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