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더해 지난 11월 17일 국회보건복지 위원회 법안 심사소위를 일명 ‘세 모녀법’이 통과했다. 여야가 진통 끝에 합의 했다는데 결과가 참혹하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은 2014년 2월 송파구에 사는 세 모녀가 큰 딸의 만성 질환과 어머니의 실직으로 인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정말 죄송합니다.” 라는 메모와 함께 갖고 있던 재산인 현금 70만 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놔두고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사건이다.
세 모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자 조항으로 인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하였고 세상에 빚을 지기 싫다는 이유로 자살한 것이다. 정부로부터 도움도 커녕 긴급복지지원제도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최후의 선택을 했다. 서울시 송파구도 이들이 세상에 빚을 지기 싫다며 어려운 조건에서도 공과금을 제때 꼬박꼬박 내왔기 때문에 지원 필요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 사건 발생 이후 곧바로 여당과 야당은 물론이고 박 대통령까지 나서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데 뜻을 같이했다. 법안은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였던 김한길과 안철수 의원이 세 모녀법을 제1호안으로 발의하였다. 놀라운 것은 채 잉크도 마르기 전에 세 모녀법은 세 모녀와 무관한 법안으로 소위를 통과한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독소조항인 부양의무자 조항을 전혀 손대지 않았다. 부모와 자녀와 사위와 며느리가 있고 이들이 전혀 경제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추정소득 60만 원으로 되어 둘이면 120만원소득으로 인정되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세 모녀와 유사한 경우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모한 것을 그대로 용인 한 것이다.
다만 수급자 범위를 조금 상향 조정했을 뿐인 것이다. 복지사각지대의 주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부양의무자 조항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뿌리째 흔들며 수많은 사각지대를 만드는 주범이다. 세 모녀도 이 조항으로 인해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으로 나아간 것이다. 요즈음 가족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부모와 자식 간에 교류가 끊긴 가족이 많고 한 부모 가족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 하물며 사위와 며느리까지 가족의 범주에 넣고 부양가족으로 치부 하는 것은 현실생활과 너무도 동떨어진 조항이다.
여기에 더해 추정소득이라는 잣대를 대어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으면 60만 원의 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부양의무자의 소득으로 인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혜택을 받으려면 담당 공무원의 현장실사와 조사보고서를 심의위에서 심사하여 입증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 부족한 인원으로 인해 그들조차 자살이 속출하는 있는 사회복지담당 공무원들에게 무조건적인 열정과 의지, 헌신만을 강요할 수 없다.
또한 병증이 있다 하여도 우울증의 예를 보면 3개월 이상 입원 치료를 받은 진단서를 제출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와 문턱으로 인해 사각지대 사람들이 법의 보호 둘레로 들어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을 뻔히 알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정부 측의 예산타령에 굴복하여 슬그머니 알맹이는 빠진 세 모녀법이라 불릴 이유도 상실한 얼토당토않은 법안을 통과 시킨 것은 역시나 한통속이고 국회의원 특히 야당의원들의 직무유기와 다름이 아니다.
이 나라는 진정 민심을 떠난 민심 위에 군림하는 관료들과 국회의원들의 나라인가? 사건이 터지면 온 세상이 떠나갈 듯이 호들갑을 떨다가 여론이 잠잠해지고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용두사미의 법안 손질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과거를 답습하는 풍조와 고질병은 그들 스스로는 고칠 수 없는 것인가?
낡은 정치와 후진적인 행태는 현 정치인들 스스로는 극복할 수 없고 시민들이 나서 정치의 대변화를 꾀하여 기득권을 송두리째 뒤집어야만 가능한 일로 보인다. 이제 기대가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는 깨어 있는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행동하는 시민들이 나서서 낡은 정치를 바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