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하 국립전주박물관장(54)이 요즘 각종 세미나와 행사장, 각급 기관장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소리를 높이는 구호다. 전주를 본거지로 한 후백제에 대한 연구와 지역의 관심이 너무 소홀하다는 질타가 이 구호에 담겨 있다. 전주가 고향도 아니고(강원도 출신), 국립박물관장으로 부임한지 2년도 채 안된 그가 왜 후백제를 중요 화두로 삼고 있을까.
지역신문발전위원회 후원으로 지난 21일 전북일보 회의실에서 열린 전북일보 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유 관장은 ‘후백제 및 후백제 도성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잊힌 역사가 되고 있고, 패배한 역사로 폄훼되는 후백제를 누가 기억하고 기려야 할까요. 전주와 전북이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일본서기> 에 의해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가야의 역사가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은 1980년대 김해와 고령지역이 본격적으로 발굴되면서 입니다. 두 지역은 왕경이 있었던 곳으로 자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일본서기>
유 관장은 후백제 재조명을 통해 전주가 고대 왕도로서 위상을 갖게 되고 전북의 문화적 정체성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후백제 45년의 역사 중 37년간의 수도가 전주였던 점을 두고서다.
후백제가 짧은 기간 존속했지만,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중국·일본과 다각적인 외교 활동을 펼쳤으며, 백제문화를 재현하는 등 후삼국기 최강대국 후백제의 정치·문화의 중심이 바로 전주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유적으로 발굴조사된 것은 지금까지 동고산성이 유일할 만큼 후백제 조명에 대한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해 안타깝단다. 후백제와 같은 시기에 존립했던 DMZ에 위치한 태봉만 해도 고대 왕도로서 기본적인 성격과 특징이 대부분 밝혔진 것과도 대비된다는 것. 후백제에 대해 우리가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후삼국 중에서도 가장 뒤떨어진 연구라는 점에서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후백제를 전주와 전북의 역사적 자산으로 삼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는 역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유 관장은 후백제에 대한 연구가 동고산성을 발굴한 고 전영래 박사(전 원광대 교수) 이후 멈춰버렸고, 오히려 퇴보했다고 반성했다. 도성의 위치만 해도 학자에 따라 여러 가지 설만 제기됐고, 논란만 지속되면서다. 그는 최근 일제강점기의 지도와 지적도, <전주부사> , 도시계획도, 지적도, 1968년 촬영된 위성사진 등을 종합해 도성의 윤곽이 나온 만큼 ‘눈으로 보는 역사 만들기’에 전주박물관이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전주부사>
이를 위해 2023년까지 관련기관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물리탐사·발굴조사·후백제 관련 국외유물특별전 등을 가질 계획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