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비선 실세로 꼽히는 정윤회 씨가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권력’과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에 개입했다는 취지의 청와대 내부 문건이 보도돼 연말 정국의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자칫하면 이 문제가 국정의 블랙홀이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열리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어떤 입장을 밝힐지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계일보가 정 씨의 국정개입 행위가 담긴 청와대 감찰보고서 내용을 보도한 데 대해 청와대는 지난 28일 즉각 ‘찌라시(증권가 정보지)’에 나온 내용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내는 등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야권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규정하고 진상조사단을 구성하는 등 총공세에 나섰고, 여당은 초대형 악재로 번지지 않을까 바짝 긴장하고 있다.
세계일보는 이날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명의의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이 달린 문건을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이 문건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을 지낸 정 씨와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1부속비서관, 안봉근 2부속비서관)이 지난해 10월부터 매월 두 차례 만나 청와대와 정부의 동향을 논의하고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설 등을 포함한 청와대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당시 이 문건은 공직기강비서관실 A 경정이 작성, 조응천 비서관과 홍경식 민정수석을 거쳐 김 실장에게 보고됐다는 것이다.
이후 A 경정은 좌천성 인사조치됐고, 조 비서관도 경질됐다.
이 때문에 여권 내부에서 ‘십상시’와 김 실장 그룹 간에 권력투쟁이 있었고, 반(反)정 씨 그룹이 이 문건을 흘렸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김 실장은 입을 닫고 있다.
청와대는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보도에 나오는 내용은 시중에 근거없는 풍설을 모은 이른바 찌라시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하고, 당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청와대가 ‘맹세코 없다’던 비선세력의 실체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보고서로 드러난 만큼 국회의 진상조사가 불가피해졌다”면서 “과거에도 비선세력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찌라시’를 들먹였다고 해서 청와대 내부의 보고서마저 ‘찌라시’라고 강변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하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내부문건 보도가 문건유출 책임론과 심지어 권력실세 암투설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자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이번 사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3년차를 앞두고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상황인식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청와대는 일단 사태의 확산을 막는 일에 주력했다. 검찰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야권이 제기하는 `비선실세 국정농단’ 공세부터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