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12월 완주군 이서면 상림리(현 전주 완산구 상림동)에서 발견된 완주 상림리 청동검 26자루가 제작에서 사용, 폐기까지 서로 다른 과정을 겪은 동검들로 이뤄져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 같은 주장은 국립전주박물관과 한국청동기학회 공동 주최로 지난 5일 국립전주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학술 세미나 ‘완주 상림리 청동검의 재조명’에서 나왔다.
완주 상림리 청동검은 완주-김제간 국도변 근처 언덕 남사면에서 발견됐고, 고(故) 전영래 원광대 교수가 학계에 발표하면서 알려졌다. 지표 아래 60㎝ 지점에서 동검 26점의 날이 동편을 향한 채 한데 묶여 출토됐다.
남한에서 발견된 유일무이한 중국계 동검의 매납 유적으로 비단 한국뿐 아니라 기원전 1000년께 동아시아 동검 문화의 형성과 전개를 해석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주목받았다.
국립전주박물관 이나경 학예연구사는 “완주 상림리 동검은 속이 차 있는 원주 형태의 병부(柄部)에 두 개의 원형 돌대와 검수(劍首)를 동시에 주조한 유절병식 동검에 해당한다”며 “그러나 완주 상림리 동검의 형태에 대한 관찰과 각 속성에 대한 계측 결과 동일한 거푸집으로 제작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완주 상림리 동검은 26점을 일괄 주조한 후 한꺼번에 매납한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목적으로 제작·사용되다가 묻힌 것, 비실용적인 목적으로 모방해 만들고 인위적으로 훼손을 가한 후 묻은 것, 비실용적인 목적으로 제작한 후 묻은 것, 제작 과정에서 주조 결함이 일어난 것을 묻은 것 등으로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로 다른 목적, 서로 다른 제작자에 의해 생산됐다고 할지라도 26점을 한 군데로 모은 주체에 대해 향후 지속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경희대학교 사학과 강인욱 교수는 “지척의 거리를 두고 상림리 동검 매납 유적과 대형의 세형동검 분묘군이 존재한다”며 “이들 유적에서 수백여 기에 달하는 세형동검 토광묘가 발굴됐지만, 무덤에서 동주식검은 전혀 발견된 바 없어 상림리 매납 유구를 만든 사람들은 독자적인 청동기를 생산하던 청동기 장인 집단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림리 동검들은 동주식검의 제작 방식을 충실히 따르며 제작됐지만, 처음부터 사용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동검에서 착용과 관련된 어떠한 부속구나 유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동검의 사용자가 아니라 제작과 관련한 사람들이 만든 유구로 파악된다는 설명이다.
또 26점이나 되는 동검을 한데 묶어서 넣었다는 점에서 동검의 제작과 관련된 제의 행위가 이뤄진 매납 유구로도 추정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상림리 유적은 중국에서도 흔치 않은 동검 제작과 관련된 매납 유적으로 세형동검 문화 단계인 한반도 남서부 지역에서 발견됐다는 점에서 단순한 물자의 교류를 넘어 청동기 제작을 중심으로 동북아 일대의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한편, 완주 상림리 청동검 26자루를 소개하는 이번 전시회는 내년 1월 25일까지 국립전주박물관 고대문화실에서 진행된다. 평안남도와 파주 와동리, 함평 초포리 일대에서 출토된 청동검도 함께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