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만이 보게 하는 세계가 있다. 수없는 보석을 뿌려놓은 듯 하늘을 흐르는 은하수는 밤이어야만 자태를 드러낼 수 있다. 별에는 색도 많다. 그 형형색색의 별들이 은밀한 색을 보여주는 것도 깊은 어둠에서만 가능하다. 매일 눈이 내리는 전북도립미술관, 눈으로 가득한 이곳에서 대원사가 멀지 않다. 밤 눈빛 속의 산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달빛이 없어도 지붕 위의 눈이며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길이 훤하다. 눈 쌓인 밤, 나무들은 흐드러진 벚꽃 터널보다도 더 흰 가지들을 드리우고 있다. 가끔 내미는 달빛 속의 눈 세상은 눈이 부실 지경이다. 현란한 불빛을 드러내는 도시의 야경 못지않게 어둠이 선사하는 극한의 아름다움이 아닐 수 없다.
파리의 가장 누추한 곳 중의 하나 바토 라보아르(세탁선)는 피카소와 브라크가 만난 곳이다. 파리로 이주한 무명의 작가 피카소의 아틀리에가 있던 ‘세탁선’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거처였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브라크를 감전시켰다. 브라크는 곧 피카소와 함께 본격적인 미술실험을 진행한다. 브라크가 그린 1908년의 ‘에스타크 풍경’을 보고 마티스가 ‘입방체(큐브)’를 쌓아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것은 곧 그들 예술 운동의 이름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큐비즘(Cubism)이라 부르는 미술은 그렇게 태어났다.
큐비즘은 논쟁적인 모더니즘의 중심이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이 충동적인 피카소와는 다른 논리적인 브라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웅적인 창조성이 넘치는 피카소와 달리 부드러운 고전인 브라크를 <큐비즘> 의 저자 존 골딩이 언급하고 있다. 브라크는 큐비즘 성공의 중요한 열쇠였던 셈이다. 큐비즘을 이은 수많은 예술운동의 뿌리로 현대미술의 아버지 세잔과 그 뒤를 잇고 있는 브라크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 큐비즘>
전북도립미술관 개관 10주년 특별전 ‘열정의 시대, 피카소에서 천경자까지’에 브라크 작품 80호 크기의 대작이 전시되고 있다. 바탕에 두터운 질감처리를 하여 탄탄한 마무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위로 해바라기 같은 꽃이 보이고 아래로 넓은 면으로 쪼개진 팔레트가 보인다. 입방체에서 시작되었지만 색종이를 오려붙인 듯 평면화 된 것이 큐비즘 발전의 마지막 단계였다. 이 작품도 그와 같은 성숙한 큐비즘을 보여주기에 손색없는 그림이다. 피카소에 가린 어둠이 있다한들 브라크라는 거성(巨星)을 보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난독증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브라크 작품은 때로 피카소의 작품가를 능가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회에 나온 작품 중 이 작품이 최고가인 것은 그런 이유들에서 비롯되었다.
최형순(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