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지난 10일 농민군과 관군이 전투를 벌인 정읍 황토현전적지에 묘지를 조성하는 것은 사적지 성격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정읍시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등이 신청한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의 황토현 내 안장 요청을 최종 거부했다.
이에 따라 1996년 일본에서 봉환된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은 고국에서 조차 안식처를 찾지 못한 채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무려 18년이다. 18년 전 망자의 유골을 잘 모시겠다며 앞장서 봉환해 온 전북, 부끄러운 줄은 아는가 모를 일이다.
이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유골은 1995년 일본 훗카이도 대학의 옛 표본고에서 발견됐다. 유골 측면에 ‘한국 동학당 수괴의 수급, 사토 마사지로로부터’라는 글이 적혀 있고, 유골과 함께 발견된 문서에 ‘1906년 전남 진도에서 채집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전북 사회는 유골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동학농민혁명군의 지도자를 모셔야 한다며 봉환위원회까지 구성해 유골을 봉환해 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장고 끝에 악수라고, 유골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등을 놓고 지난 18년간 말만 무성했다. 결국 전주역사박물관 지하 수장고에 넣어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뒤늦게 정읍시가 동학농민혁명 발상지인 황토현 전적지에 모시기 위해 문화재청에 ‘문화재 현상 변경 신청’을 했지만 이 마저도 문화재청의 거부로 물거품됐다. 사실 이해할 수는 없다. 어차피 황토현 전적지는 수많은 유·무명 농민군의 뜻을 기리는 곳 아닌가.
전북은 120년 전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발상지다. 부패한 탐관오리들을 척결하고 백성이 사람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는 ‘인간 중심의 세상’을 꿈꾼 동학농민혁명의 고장임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100년 전 어느 산천에서 목이 잘린 무명의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골 하나 제대로 안장 못하는 곳이 전북이다. 3년 후 정읍시 덕천면에 들어서는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 조성되는 추모공간에 모실 계획이라고 하지만, 녹두장군이 울고 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