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까닭도 모르고 답답하게 지낼 때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아이들의 생리불순이다. 갈수록 많아지는데 분명치 않으니 답답하다. 몸무게, 운동, 스트레스가 관계된다 하나, 갸우뚱거리게 한다. 그러다 어느 겨울날 아침 깨달음을 얻었으니 바로 빛과 그림자였다.
수능이 끝나면 여고를 대상으로 성교육을 다니는데, 멀리 광주까지 가는 날이었다. 다니던 학교가 아닌 낯선 곳이라 신경이 쓰였다. 준비를 마치고 머리도 식힐 겸 정원에 나갔다.
초겨울, 나목들 속에 잎이 지지 않은 목련을 보았다. 가로등에 접해있는 목련에 잎이 달려 있었다. 가로등 열에 잎이 지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러나 계속 관찰해보니 열이 아닌 빛 때문이었다. 낮에 갈색이던 잎이 밤에는 불빛에 초록빛을 띠었다. 겨울이 더 깊어지자 잎은 지고 꽃망울이 커지는데, 늦게 잎이 달렸던 가지에는 꽃망울이 없었으며, 4월이 되어도 꽃이 피지 않았다.
“가로등 밑은 암 것도 안 되어, 들깨도 안 되고, 강낭콩이니 녹두도 넝쿨만 뻗고, 그려서 내가 가로등 밑자리 여남은 평을 동네에 내놓은 거여. 시멘트 입혀서 동네 주차장으로 쓴 게 얼매나 존냐.”
어머니가 집에 들른 아들에게 자랑하더라는 이정록 시인의 글이 생각났다. 동네 입구에 가로등을 놓자 그 아래는 농사가 안 되었다. 그래서 농사를 포기하고 동네에 희사한 것이다. 왜 가로등 가에 목련꽃이 피지 않고 들깨가 열지 않는 것일까?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구약 창세기 천지 창조 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하늘과 땅이 만들어지고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빛이다. 빛에 의해 낮과 밤이 생기고, 빛에 적응하며 모든 생물은 진화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에디슨이 하나님처럼 빛을 만든다. 이후 우리는 새로운 빛 속에서 길들고 있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시시때때 변한다. 일주기로 변하는 것을 ‘서카디안 리듬’이라 한다. 이 조절은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에 의한다. 호르몬은 밤 10시에서 새벽 4시 사이에 분비되며 새벽 2시에 가장 많이 분비된다. 또 어두울수록 많이 분비된다. 멜라토닌은 항산화 작용, 면역에도 영향 끼치고, 잠을 잘 자게 한다. 그래서 야간근무자들이 쉬이 살이 찌고, 각종 질병에 잘 걸리는 것이다. 밤 10시에서 새벽 4시 사이에는 어둡게 하고 잠을 푹 자야 규칙적인 생체 리듬을 유지할 수 있다. 건강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잠을 잘 자야 아름다운 미인, ‘잠자는 미녀’가 된다.
전등불이 우리의 새싹들을 해치고 있다.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불 켠 채 자는 아이들. 밤을 새우고 새벽에 잠드는 아이들. 아이를 키우는 엄마, 학생을 지도하는 선생님에게 당부한다. 많은 아이가 생리불순을 겪는 걸 잘 알기에 거듭 부탁한다. 밤 10시에서 새벽 4시 사이에는 불을 끄고 잠을 자게 해야 한다.
시골에서 자라 아침에 해 뜨는 동쪽을 향해 가고 저녁에는 해 지는 석양으로 향하던 필자는 여명이나 황혼에 고동치듯 두근거리곤 한다. 왜 그 시간만 되면 내 가슴은 두근거리고 소리를 낼 수 있는 모든 생물은 소리를 지르는지 찌르르 찌르르, 뻐꾹 뻐꾹, 뀌뜰 뀌뜰, 꼬끼오. 경계에 꽃이 핀다. 밝음과 어둠이 바뀌는 시간이면 만물이 요동친다. 어서 가자 어서 가 일하러 가야지. 어서 가자 어서 가 잠자러 가야지.
△이희섭 씨는 전북대 의과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미즈베베산부인과병원장이다. 김제문인협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