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은 한번 지나가면 다신 돌아오지 않는다.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 청춘이기에 실수를 해도 실패하지 않을 수 있고, 틀려도 바로 잡을 기회가 있다. 노하우는 부족하지만 잠재력은 충분하다. 물론 전문가가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 경험이 없어 서툴다. 배우면서 일을 하다 보니 느리다. 그럼 청년은 사회를 배움의 기회로, 경력 한 줄로만 살아가야 할까? 한 일, 들인 시간보다 대우를 받지 못해도 견뎌야만 하는 걸까?
‘너의 열정을 발휘할 기회를 줄게. 대신 임금은 바라지마(없어).’
‘열정페이’ 덕분에 청년들에 대한 차별이 사회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몇몇 업계에서 거론된 청년의 부당한 대우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 견습, 인턴, 교육생, 알바 등으로 존재하는 비일비재한 모습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이유로 목소리 한 번 내기 어렵다. 억울하지만 ‘그것도 못 견디면서 뭘 하겠냐’는 말을 들을까봐 이 악물고 버틴다. 하고 싶은 일이 청춘들에게 독으로 다가온다. 열정은 꿈을 실현시키기보단 잔혹한 현실을 경험하게 해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이들을 부러워하고 싶지만 그들의 현실은 슬프다. 열정을 가진 청춘들에게는 대우가 아닌 희생만 주어지고 있다.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기도 전에 당장 몇 년 뒤 취직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꿈은 오래 전 현실적인 단어에서 이상적인 단어가 됐다.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것 하라던 어른들의 말은 안정적인 직장 잡으면 하고 싶은 것 찾아 취미생활로 즐기라는 말로 바뀌었다. 삶의 기준을 사회의 기준에 맞추려다보니 하나, 둘 포기하게 된다. 이젠 우리보고 연애, 결혼, 출산에 인간관계, 내 집 마련까지 포기했다고 ‘오포세대’란다. 우리가 포기했다기보다는 사회가 포기시켰다고 해야 맞는 말 같다.
누구나 꿈은 있다. 젊음에 열정, 수많은 기회까지 있는 청년들은 오죽할까. 청년은 도전해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이들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청춘의 현실은 열정의 보상이라곤 최저시급도 되지 않는다. 결국 마음 안에 있던 꿈과 열정은 더 깊숙이 집어넣게 된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따르게 된다.
청춘들이 안타깝다고 굳이 위로를 보낼 필요는 없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잠깐일 뿐이다. 지금 상황이 문제라고 느껴진다면 사회에 발을 내딛은 청년을 붙잡아 줬으면 한다. 지금까지 이어진 ‘열정페이’에 대한 악습을 끊고 청년의 열정을 제 값에 사주길 바란다. 안타깝다는 마음보단 변화를 위한 행동을 해주길 부탁한다.
청춘은 새 전구다. 빛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전구의 종류가 다양하듯 각자 성격과 재능도 다르다. 전구는 아무리 아름다운 빛을 가졌다 하더라도 에너지가 없으면 그 빛을 낼 수 없다. 형형색색의 전구들이 있어도 한 곳에만 모아놓으면 의미 없기 마련이다. 사회가 청년들이 각자 제자리에서 빛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아름다운 빛들의 향연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김도연 전 편집장은 전북대 공과대학 도시공학과에 재학 중이며 전북대신문사 학생기자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