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스토리 제작소 되어야

▲ 유병하 국립 전주박물관장
현대사회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 목말라 있는 것 같다. 신문·방송사는 수시로 ‘재미있는 스토리의 발굴’을 강조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자치단체도 ‘스토리를 적극 활용한 문화관광’을 주창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서 본다면 박물관은 반성할 여지가 많은 것 같다. 왜냐하면 가장 많은 스토리를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유물 이야기만 확대 재생산

 

사실 스토리를 발굴하고 주변에 알리는 작업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이 그렇게 하지 못한 배경에는 소위 ‘교과서 속 문화재’나 ‘지정 문화재’의 영향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박물관도 ‘명품 유물’ 혹은 ‘중요한 문화재’만 귀히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러한 작업에 소홀해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우리에게 익숙한 유물의 이야기만 계속 확대 재생산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박물관의 전시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토제 등잔(燈盞)에도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손으로 간단하게 빚어 구웠고 기름 위에 심지가 타오르면서 검게 그을린 흔적도 그대로 남아있지만, 고대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왜냐하면 인간의 활동 폭을 밤까지 연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토제 등잔 이전에 받침이 있는 등잔형토기(燈盞形土器)도 있었고, 말 등에 올려서 어둠을 물리치던 등울도 있었다. 하지만 6세기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토제 등잔이 사용됨으로써 진정한 조명(照明)의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등잔 여러 개를 목제나 금속제의 받침 위에 올려놓아 조도(照度)를 상당량 높일 수 있었고, 필요하다면 개별 등잔을 방바닥이나 탁자, 서가 위에 올려놓아 편의성도 대폭 늘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주와 부여의 고대 왕궁과 사찰에 빠짐없이 토제 등잔이 출토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무나 흙으로 만든 남근(男根) 역시 등잔처럼 고대문화를 설명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유물이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도 제대로 아는 이는 매우 드물 것으로 생각한다.

 

원래 남근은 신(神)에게 바치는 중요한 공헌물(貢獻物)이었다. 고대사회는 기본적으로 농사 이외에 전쟁과 제사가 가장 중요했다.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장정(壯丁)이 필요하였고 충분한 식량도 준비되어야 했다. 따라서 인구생산력을 증대하면서 농업생산력도 증대해 나가는 것이 필수적이었고, 그러한 바람에 적합한 종교적 상징물[symbol]이 바로 남근이었다. 각종 제사에 남근이 중요한 공헌물로 사용되었던 이유이다. 이러한 흔적은 경주 및 부여의 왕궁이나 도로, 논에서 실제 유물로 확인된 바 있다.

 

새로운 이야기 발굴해 전달해야

 

이렇게 등잔과 남근이 빠진 고대사회의 이해란 원래의 모습에서 한창 부족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는 박물관 직원들이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대중의 관심을 쫓아서 국보급의 유물이나 교과서에서 다루는 유물만 포커스(focus)를 맞추다 보니 빈약한 스토리텔링으로 단조로운 전시와 교육을 하게 된 것이다. ‘문화의 주머니’를 새로운 이야기로 채워나가기 보다는 주머니 속의 이야기만 자꾸 꺼내어 쓴 셈이다.

 

박물관은 이제부터라도 스토리 제작소가 되어야 한다. 전공분야의 연구를 보다 깊게 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할 뿐만 아니라 이것을 주변에 잘 전달해서 개개인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거나 새로운 문화적 창조의 밑거름이 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