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동학혁명 후예들

“기념일이 제정되지 않아 가장 마음 고생이 심한 사람들은 바로 유족들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학살을 당한 선조들 앞에 정말 부끄럽다.”

 

작년 11월27일 대전에서 열린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 토론회’에서 김석태 동학농민혁명 유족회장이 토로한 심정이다. 사회자인 신영우 충북대 교수도 “이제는 갈등을 봉합하고 기념일 제정에 힘을 모으자. 내년 2월쯤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해 이 문제를 마무리하자”고 제안했다. 참석자들은 이에 동의했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2주갑)을 맞은 작년 한해는 각종 세미나와 학술대회가 풍성하게 열렸다. 2주갑이 갖는 의미가 매우 컸기 때문에 국가기념일 제정에 대한 기대도 컸다. △특별법공포일(3월5일) △무장기포일(음력 3월20일) △황토현전승일(음력 4월7일) △전주점령일(음력 4월27일) 등이 대상이다. 그럼에도 국가기념일 제정 문제는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기념일도 제정치 못하고 또 한 해를 넘겨야 하느냐”는 질문에 “음력으로 치면 내년 2월까지는 2주갑의 해”라며 2월까지 마무리 하면 될 것이라고 한 학계 인사도 있었다.

 

그 시점인 2월이다. 그런데도 진일보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 누구도, 어느 단체도 준비작업조차 거론치 않고 있다. 이해관계 때문에 그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 하지 않는다. 자기 판단 말고는 남의 그것을 용인하려 하지도 않는다. 정읍 고창 등 관련 자치단체와 고착된 사고를 갖고 있는 몇몇 학계 인사, 기념재단 등이 장본인들이다. 매우 편협하고 이기주의적이다. 그러면서도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 세계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치스럽다.

 

지난주엔 전주시가 안식처를 찾지 못했던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을 전주 완산공원에 안장키로 결정했다. 1995년 일본 북해도 대학의 한 연구실에서 발견 당시 ‘동학당 수괴의 수급’이라고 적혀 있었고, 일본으로 이송된 걸로 보아 이 유골의 주인공은 상당히 고위급 지도자였을 것이다. 국내로 봉환되고도 마땅한 안장지를 찾지 못해 20년 동안이나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었으니 지도자에 대한 ‘예의’가 말이 아니다.

 

하는 꼴을 보면 정작 해야 할 일을 방기하고, 사치스럽게 립서비스나 일삼는 후손들이라는 책망을 듣기 딱 알맞다. 이젠 정읍 고창 부안 세 단체장이 주체가 돼 기념일 제정의 해법을 공동 모색하면 어떨까 싶다.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