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사실은 어느 때 어떤 관점에서 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엄청나기도 하고 양극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더구나 조상의 영령들의 문제에 접근하다 보면 그 예우까지 겹쳐 더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다. 코무덤의 문제는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문제가 되겠다. 모든 역사 유적이 그렇듯 현장성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데도 만인의총을 본무덤에서 왕산 기슭 현 위치로 이장하는데 반대를 했던 남원시민이나 국민들은 단 한사람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본무덤 자리가 저습지대라는 것과 성역화하기에 협소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그보다 더 크고 절실했던 것은 그 저습지대에 선열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후손들로서의 자성과 자각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바꿔 말하면 후손으로서의 도리로 좋은 자리를 잡아 모신다는 순수함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열들의 진토를 다 발굴해서 옮기지는 못한 잘못을 저질렀어도 그 의도가 순수하고 사리에 맞기 때문에 지금도 문제 삼지 않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코무덤으로 돌아가 보자. 일본이 코무덤을 귀무덤으로 고쳐 부르는 것은 코를 자른다는 것은 귀를 자른다는 것 보다 훨씬 잔인하고 악독한 행위로 인식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에 그 잔악함을 경감시키기 위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인들이라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본을 이끌어 왔던 권력이나 일부 지식인들의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한 부분이다. 이 코무덤(귀무덤)의 안내문을 보면 ‘히데요시의 무장들은 예로부터 전공의 표식이었던 적군의 목 대신에 남녀의 코와 귀를 베어’라고 하면서 조선인에게만 저지른 악독함이 아니었음을 은연중에 부각시키고 ‘공양의식을 거행하였다고 한다’라는 말을 덧붙여 인도주의적인 예를 갖추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에 ‘조선민중의 수난을 역사의 교훈으로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로 끝맺고 있는데 과연 일본이 그 코무덤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 있을까?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동학농민혁명을 빙자해 우리나라에 왜군을 파견하여 농민군을 학살 섬멸하여 농민혁명을 좌절 시키고 한반도를 중일전쟁의 텃밭으로 만들어 초토화시켰으며 을사조약에 이어 한일합방으로 식민지화 했겠는가? 그것이 코무덤의 역사교훈인가?
코무덤을 일본 현지에 그대로 둬 자자손손 느끼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해 코무덤을 고국으로 이장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그냥 ‘순진’하다고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영웅이면서 우상이다. 일본 최초로 대륙을 도모하려 했고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이를 실현하려 행동으로 옮겼었던 최초의 인물로 우상처럼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다. 현재 일본의 극우파를 최선봉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아베정권의 독도 문제, 교과서 문제, 위안부 문제 등을 보면서 그들의 변화를 기대한다? 자성과 그에 따른 행동 변화가 가능하리라고 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