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역, 어느 나라에서건 한 해의 시작을 의미 있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없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네 설은 그 풍속에 깃든 의미와 재미가 더욱 각별하다.
설은 절기상으로 정월 초하루를 일컫지만, 선조들의 실생활에선 새해 전날부터 대보름까지를 아울렀다. 섣달그믐, 가족과 친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묵은세배’를 나누던 풍습이 대표적인 예다.
설날 아침이면, 색동옷 설빔을 차려 입고 마을 어른들을 찾아 인사드리며 허리춤 깊숙이 복주머니를 채우던 기억도 새롭다. 두어 고개 넘어야 가닿을 먼 곳 친지들 안방까지 기웃거리다 보면 정월 보름까지 세배 다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요즘에야 지폐로 세뱃돈을 주고받지만, 그때만 해도 동전 몇 개 쥐어주시던 어른들이 많았다.
그마저 여의치 않은 이들은 아이들 고사리 손을 보듬으며 허허로운 웃음으로 텅 빈 호주머니를 대신하는 경우도 흔했다.
새해 첫날이 집안 식구들 간의 작은 잔치였다면, 정월대보름은 마을주민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한바탕 축제였다. 풍물패가 동네를 돌며 지신밟기를 하는 동안, 마당에 둘러앉은 어른들은 가마니 위에 윷을 던져 놀았다.
늦겨울 얼음 인 논밭 위에선 아이들이 팽이를 돌리고, 밤나무 아래에선 꽃다운 처녀들이 널을 뛰며 동네 청년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휘영청 보름달 밝은 밤이면 뒷동산에 올라 달집을 태우고 쥐불놀이를 하며 달맞이 소원을 빌었다. 모두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풍습들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전래의 풍경도 어느새 박제화 되고 잊혀진 추억이 되고 있다. 명절 연휴, 흩어져 살던 가족과 친지들이 모처럼 한 자리에 둘러앉지만, 차례상을 물리면 이내 데면데면해진 얼굴들이 된다.
세뱃돈을 거둔 아이들은 다시 손에 쥔 스마트폰에 고개를 묻는다. 해외로 향하는 공항 국제선 인파는 이즈음이 가장 붐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핵가족화를 넘어선 탈(脫)가족 시대가 자아내는 풍경이다.
지난 설에도 많은 이들과 새해 인사를 주고받았다. 달라진 풍속만큼이나 마음을 전하는 수단도 많이 변모했다. 세배와 연하장을 대신한 자리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이메일과 SNS가 들어앉았다. 쉽고 빠르게, 더 많은 이웃들에게 안부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편리가 진정 우리의 마음마저 풍요롭게 해준 것일까? 빛과 같이 오고간 문자들 속에 과연 얼마만큼의 진심이 담겨져 있을까? 소통을 돕는 문명의 이기가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그 공허한 심사마저 감추기가 어렵다.
잃어버린 우리의 지난 풍속을 새삼 되새기는 것은 빛바랜 추억에 대한 아쉬움 때문만은 아니다. 그 풍요로운 풍속의 속살에 깊이 배어 있는 선조들의 얼과 정이 그리워서다.
번거롭고 더딘 일이지만, 한 자 한 자 꾹꾹 펜으로 눌러쓴 종이 연하장이 더 반갑다. 객쩍어 보여도 얼굴 마주하며 나누는 인사가 더 정감 있고 살갑다. 정월 초하루를 보내며 다시 한 번 가슴에 담게 되는 상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