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없는 복지 가능한가

▲ 김관영 국회의원·전북 군산
연말정산 사태를 계기로 증세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4일 대정부 질문에서 나는 박근혜 정부가 주장한 ‘증세 없는 복지’의 허구성에 대해 지적했다. “증세의 사전적 정의는 세금의 액수를 늘리거나 세율을 높이는 것으로 담뱃세, 주민세, 자동차세를 올린다면 증세다”고 언급하며 “증세는 국세세목의 세율인상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담배에 개별소비세를 신설한다든지 지방세를 올리는 것은 증세가 아니라는 정부의 해석은 잘못됐다. 국민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세금을 더 낸다면 그것이 곧 증세인 것이다”며 정부가 증세문제에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복지지출 재원부담 방안 공론화 필요

 

지난 3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러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청와대와 박근혜 정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국민 권리로서 복지 혜택을 누리려면 국민 의무인 납세라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다”고 덧붙였다. 옳은 지적이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법인세 인상까지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다행스런 인식이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증세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공약가계부의 파산 선고이자 지금까지의 정책 기조에 대한 반성문이나 다름없다

 

나는 복지지출 증가속도와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복지비를 지금처럼 계속 늘려갈 것인지, 늘린다면 그 재원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를 국민에게 다시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국민이 세금을 못 내겠다면 복지를 더 늘릴 수 없는 것이고,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점을 국민에게 솔직히 털어 놓고 답을 구해야 한다. 그저 ‘증세 없다’는 공허한 구두선에만 매달린 채 은근슬쩍 세금을 올리는 것은 책임 있는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복지지출과 재원부담 방안을 공론화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원칙과 기준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세금을 늘려서는 안 될 일이다. MB정부의 부자감세가 가져온 재정 악화를 변칙적이고 우회적인 증세로 서민과 중산층에게 부담시켜서도 안 된다. MB정부는 지난 2008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3%포인트 내렸다. 세제혜택을 준만큼 투자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법인세 감세 후 기업들의 투자는 늘지 않고 사내유보금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09~2013)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 인하에 따라 기업들이 감면받은 세금이 무려 37조2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법인세 감세효과 중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돌아간 금액은 27조8000억원, 중소기업은 9조4000억원의 감세혜택을 보아 대기업에게 혜택도 집중되어 있다. 법인세 인상이 필요한 이유다.

 

조세 체계 전반 개편 논의 필요

 

최경환 부총리는 증세보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출 구조조정이 먼저라고 얘기한다. 세출구조조정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부자감세 철회와 대기업 법인세부터 인상하고 복지지출문제도 논의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래야 국민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해 우리 복지 지출이 적은 편에 속하는데, 세출구조조정 문제가 일방적인 복지 축소 논의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세금이 빠진 복지 구조조정은 결국 ‘증세 없는 복지 축소’로 굳어질 수 있고, 복지가 빠진 증세 논의는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부터라도 소득세나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조세체계 전반의 개편을 논의 하는 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