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어느 날 문득, 스스로 피곤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 다 가는 여행을. 한번 안 가본 것이 갑자기 억울했다. 아, 내 인생에서 내 의지로 여행을 갔던 일이 몇 번이나 있던가. 사실 지난 해 바캉스 여행을 목표로 삼았었다. 하지만 이 핑계 저 핑계에 이것 저것 따지다 결국에 공연가던 길에 전주천에서 다리 몇 번 담근 걸로 땡이었다.
붐비지 않을 만큼 사람이 많지 않은 곳, 조용하지만 주변에 볼것이 많은 곳, 공기가 좋은 곳, 맛있는 음식이 많은 곳 이런 자잘한 조건을 다 내걸고 여행이라니…여행을 떠나기엔 내가 너무 바쁘고 까다로운 사람이 되어버린 것 일까?
급하게 캘린더를 열고 일정을 확인했다. 별 다른 스케줄이 없었지만, 토요일에 서울에 미팅이 하나 있었다. 오히려 이참에 잘되었다 싶었다. 거의 매주 가는 서울이지만 정작 어떤 곳에 뭐가 있는지는 몰랐기 때문에…아마 시간에 쫓겨 그냥 지나친 곳도 많을거다. 그래, 여행이라고 너무 거창할 필요 없지. 그러곤 다음날 아침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뭘 해볼까 고민하지도 않고 무작정 지하철부터 탔다. 몇 정거장을 지나치고 나서야 머릿속에 그저 지하철 역이름으로 밖에 기억되지 않았던 곳들을 하나씩 다녀보기로 했다. 차갑고 삭막하게만 느껴지던 익숙한 서울 풍경도 여행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특히 볼거리 없다며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친구도, 정해진 약속 시간도 없으니 급하게 걷지 않아도 됐고, 지하철을 놓쳐도 천하태평이었다.
비록 감탄을 금치못할 장관이나 모래사장에서 비키니를 입은 금발의 아가씨도, 셀카봉도 없었지만 바쁜 사람들 틈에서 모처럼 느껴보는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만약, 친구들과 함께 서울이 아닌 평소 방송에서 리포터가 갖은 리액션을 남발하며 소개된 ‘핫’한 도시를 찾아가거나,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다 갈 것 같은 유명 관광지를 찾아갔다면 어땠을까?
분명 친구들의 잔소리와 함께 수 많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하루종일 부대끼다가 짜증이 폭발하기 직전, ‘이럴 바엔 차라리 집에 있을걸’ 하며 땅을 차고 후회했을 것이 뻔하다.
어쩌면, 여태껏 이런저런 핑계와 조건들을 대며, 여행을 가지 않았던 진짜 이유가 실은 나를 바쁘게 더 채찍질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라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파울로 코엘료가 그랬던가?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라고.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앞서말한 그 ‘용기’ 라는 것이 내게도 조금 생긴 것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나와 같은 사람 혹은 나보다 더한 워커홀릭 또는 겁쟁이가 있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망설이지 말고, 첫 여행지는 가까운 곳부터 고를 것! 여행에 조건을 달지 않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