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락농정 첫걸음, 농민의 자존감

▲ 이근수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 위원장
1993년 OECD는 전체 회원국 명의로 ‘농업의 다양한 공익기능’을 선포했다. 이에 따르면 농업은 단지 식량을 생산하는 1차 산업이 아니라 문화와 전통을 계승하고, 환경생태계를 보존하며, 식품의 안정성과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공익기능을 수행하는 기본산업이다. 농업이야말로 국가와 국민을 떠받치는 가장 기초적인 사업임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우리 농업정책이 산업화와 시장개방에 맞서 규모화, 대량생산을 추구하는 동안 우리 농민 중 대다수인 소농들은 경쟁력을 잃고 있다. 농가는 형편없는 소득과 열악한 환경에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간다. 상황이 이럴진대 농민이 농업에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는 건 먼 나라의 얘기나 다름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시장중심의 농업에서 지속 가능한 농업 중심으로 농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농촌에도 새로운 활력이 솟고 있다. 뛰어난 아이디어와 창조적인 경영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농민들도 많아지면서 농업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위기 안에 기회가 존재한다고 했던가. 농업과 농촌의 중심인 농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제고하고 사고의 전환을 이끌어 농민이 농업의 진정한 주체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해야 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많은 이들은 농민의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무형의 공익 자산을 생산하는 농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농민이 이에 걸맞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농산물이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공정한 소비유통체계의 확립과 정당한 이익배분구조가 농업인의 자부심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농민을 농촌의 주체로, 농정의 핵심으로 대우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 농촌은 국민경제에 큰 파급이 없는 한 별다른 이슈가 되질 못할 정도로 영향력을 잃었다. 농정에 있어서도 농민을 주도적 주체로 인식하기보다 수혜나 보호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더 많다. 진정 농민의 자생력과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선 이러한 인식부터 개선하고 농민이 농업 문제에 당당히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농정의 계획에서부터 농민이 직접 참여하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마련해 농민 스스로 농업의 청사진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전라북도가 추진 중인 ‘삼락농정’은 제값 받는 농업과 농민의 자존감 제고에 많은 노력을 쏟아 관심을 끈다. 삼락농정의 첫 번째 비전인 ‘보람 찾는 농민’은 농민과의 소통과 경청에 집중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장에 적극적으로 나와 농민과 함께 하려는 전북도의 여러 모습은 개인적으로도 큰 인상을 받았다.

 

그간 우리 농민은 국민 먹거리의 생산자라는 역할의 중요성에 비해 부당한 대우를 받아 왔다. 자존감을 얘기할 기회조차도 없었다. 자존감 없는 농민이 사는 농촌에, 생산한 농산물에 과연 건강한 미래가 있을까.

 

그렇기에 이제라도 농민이 존경받고 농촌이 대우받는 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 전북도의 정책적 노력은 우리 농업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실천해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농촌의 가치가 그렇듯 삼락농정의 성과는 시장성과 경제성만으로는 판가름 나지 않을 것이다. 자존감이 넘치는 농민이 가득한 농촌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농도 전북의 자생력을 키우는 첩경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