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공감] '인문 인프라' 부족한 시골

박물관·도서관·전시장 도시에만 몰려 아쉬움 / 고창 '책마을해리' 지역 주민 삶의 질 향상 노력

▲ 고창군 해리면 책마을해리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서평캠프 .

한 시대를 읽는 척도 가운데 하나가 책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책을 읽는가. 지난해 말부터 베스트셀러 목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 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채사장, 한빛비즈)이라는 정체를 파악하기 조금 복잡한 이름을 달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같은 이름의(혹은 줄여서 ‘지대넓얕’이라고 부르는) 팟캐스트(podcast) 내용을 엮어 펴낸 것이다.

 

채사장이라는 낯선 저자를 내세운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불어온 인문학 열풍에 힘입어 ‘도서정가제’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강신주, 고미숙 씨와 같이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인문서적으로 우리 사회를 읽는다. 한편으로는 지금 우리가 소비하는 인문학이 참다운 자기에 대한 각성, 관계에 대한 고찰 대신, ‘넓고 얕은’, 오로지 ‘드러내기(지적 대화)’만을 위한 것은 아닌가라는 쓸쓸한 단면이 읽히기도 한다.

 

인문학 열풍은 또 다른 사회현상으로도 나타난다. ‘인문 도시’가 그렇다. 이곳은 인문과 공간이 만나는 현상이다. 인문과 마을을 같이 놓으려고 하는 시도가, 지역간 불평등 해소와 닿아 있다. 인문 불평등의 완화다. 마을에 사는 사람의 삶을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하는 것, 나아가 새로운 사람들이 다시 찾게 하는 마을, 이것이 인문마을이다.

 

△인문 인프라 속에서 피어나는 도시

 

하나의 공간에 명멸하며 아로 새겨지는 시간의 흔적, 이것이야말로 중요한 인문의 자취이다. ‘인문도시 전주’를 표방하며 인문학의 다양한 영역과 만나는 전주가 그러하다. 비단 전주만이 아니다. 재작년부터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함께 ‘인문도시지원사업’을 통해 전국 17개의 도시가 인문학 프로그램을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접목해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인천 남구의 경우 ‘인천 원도심 골목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개항장과 산업단지를 넘어서 인문도시로’라는 주제로 인문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도시의 골목에서 근대, 산업화시대를 읽는 시도다.

 

영릉이 있는 여주시는 ‘여주, 세종인문도시로 날아오르다!’라는 주제로 타이포그라피(typography)를 통한 한글디자인과 세종의 리더십을 새로운 차원으로 접근하고 있다.

 

도시와 인문학은 아귀가 잘 맞아 떨어진다. 도시에는 기왕의 인문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다. 바로 도서관이다. 한때 도서관이 지어지면 주변 아파트값이 오른다, 할 만치 도서관 만들기 붐이 불었다.

 

박물관, 전시관, 공연장 또한 인문 인프라에서 중요한 자리에 있다. 이들 모두 사람이 지어놓은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모으고 재현하는 공간이다.

 

평생학습센터 같은 일상 교육이 이뤄지는 공간은 또 어떠한가. 이 교육공간이야말로 다양한 인문 인프라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이다. 모두 ‘도시’라는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인문학과 마을

▲ 고창군 해리면 책마을해리에서 매달 한 차례 열리는‘부엉이와 보름달 작은 축제’.

도시의 사정과 달리 마을의 모습은 인문학의 불평등에 놓여있다. 우리 농산어촌의 무수한 마을은 박물관, 도서관은 물론 전시장이며 공연장, 평생학습센터 같은 인문 인프라가 부족하다.

 

마을이란 모든 생산이 이루어지던 공간이었다. 먹을거리부터 입고 자고 쓰는 대부분의 것들이 만들어졌다. 그 공간의 기능은 아직 유효하다. 한때 우리 생산의 중추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아직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를 관통해온 그 관성으로 여전히 ‘하루 점드락’ 일하는 직분에 충실한 어버이들이 대부분이다. 도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인문학처럼 농어촌의 주민에게도 인문학은 필요하다.

 

인문 마을의 한 유형이 고창군 해리면 ‘책마을해리’다. 책마을해리는 지난 2012년 초부터 폐교된 라성초등학교에 운영하는 출판테마공간이다. 출판기획 편집자, 작가, 그림작가들이 모여 마을사람과 일구고 있다. 인문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는 불멸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작은도서관, 책과 종이 테마공간인 책숲과 종이숲, 책공방과 나무공방, 한지공방(활자공방)에다 책감옥, 마을사진관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 이대건 도서출판 기역 대표

어린이, 청소년, 가족이 함께 출판캠프, 독서캠프, 기자캠프에 참가해, 책읽기는 물론 마을을 둘러싼 갯벌, 염전, 논습지 등을 체험하고 책을 펴내는 체험을 진행한다.

책마을해리를 감싸는 월봉, 성산, 대정 마을사람들과 함께 3년째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마을책, 오늘을 학교 가는 날> (도서출판 기역)을 펴내기도 했다. 매달 보름달 뜨는 주말저녁에는 노래와 공독(共讀, 함께 읽기) 축제인 ‘부엉이와보름달 작은축제’를 열고 있다. 마을의 남녀노소가 달밤에 모여 공연도 즐기며 건강하고 문화가 있는 삶을 위한 인문 마을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