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던 추억을 기리며

온정 베푼 네팔 주민들 / 지진의 아픔 극복하고 / 평온한 일상 되찾길…

▲ 김도연 前 전북대신문사 편집장
나는 지금껏 딱 한 번 해외에 나간 적 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해외봉사로 2주간 네팔을 다녀왔다. 봉사활동을 한 곳은 네팔사람들 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네팔 남쪽에 위치한 어느 시골마을이었다. 그 곳에 위치한 국립학교에서 일주일 정도 봉사활동을 했다.

 

이후 포카라에 잠깐 머물고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KOICA의 주최로 이뤄진 한국문화축제에 참여했다.

 

네팔 곳곳의 도시를 다니며 든 생각은 ‘우리나라의 20~30년 전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였다. 서울과 부산보다 가까운 거리를 10시간 넘게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도로는 산을 따라 구불구불 나 있었고, 그 옆으로는 아찔한 절벽이 있었다.

 

우기에는 산사태로 종종 고속도로가 막혀 몇 십 분을 도로 위에서 꿈쩍도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

 

시내 곳곳에는 동물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생활하고 있었다. 저녁에는 숙소에 전기가 끊기는 경우가 종종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주변에 불빛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덕에 네팔 곳곳에는 멋진 풍경들이 보였다. 저녁이 되면 하늘과 산의 경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흑이 펼쳐지고 그 속에 별빛과 불빛이 어우러져 있었다. 낮에는 높은 산맥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역사를 지닌 문화유산들은 도시 곳곳에서 네팔만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 속에는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네팔 사람들이 있었다. 이방인에게 따뜻한 찌야를 내어주는 이들에게 온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첫 해외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이런 추억이 이젠 기억과 사진 몇 장으로 남았다. 몇 주 전, 네팔은 강진이라는 자연의 재앙 앞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2년 전 내가 보았던 네팔의 모습은 지진으로 사라졌다. 두 차례의 지진으로 8500명 이상의 사망자와 3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는 정확하게 파악된 수치가 아니기에 실질적인 피해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과 건물, 도로, 문화재 등 네팔 곳곳에 비극이 일어났다. 더불어 곧 시작될 우기로 피해복구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들을 돕기 위해 파견된 구조대원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열악한 상황 속에 피해복구는 쉽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진 피해가 발생한 지 몇 주가 지났음에도 구호물품 하나 못 받은 오지의 마을들이 있다.

 

네팔의 대참사는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는 아니었다. 네팔은 지진이 발생하는 지형으로 과거에도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겪은 적이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지진을 대비하기란 쉽지 않을 일이었을 것이다. 방 한 칸에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이들도 있었고, 교육봉사를 하던 중 한 반에 지우개를 갖고 있는 아이가 하나 혹은 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진 후 네팔을 찾는 손길이 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있었다면 피해를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구호를 위한 인력과 물자를 네팔로 보내고 있다. 지진 이전의 네팔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런 관심이 끊이지 않길 바란다.

 

네팔, 좋은 추억을 안겨준 나라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 때 그 모습을 이젠 볼 수 없게 됐다. 타국에서 그들의 고통을 느낄 수는 없지만 그들이 하루 빨리 지금의 아픔을 극복하고 이전의 온정을 다시 되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