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마이 원 앤 온리] 우리는 아빠·엄마·부부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 만나 결혼했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데는 또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어제(5월 21일)가 부부의 날이다. 절친 ‘단톡방’에 올라오는 글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내 발을 씻겨줬다는 친구, 앞으로 새벽기도를 같이 다니겠다는 친구, 요리와 음식쓰레기 처치 약속까지. 유독 한 구절이 눈에 띈다. ‘나는 매일 멋진 선물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최고의 선물이란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중에는 젊었을 때 부부싸움 도중 아내로부터 “당신은 나쁜 ×이세요!” 라는 말을 들었다는 친구도 있다. 지금 희망퇴직하고 집에 들어앉아 있는데, 이제 나쁜 ×이 될 수조차 없는 환경일 터. 사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치료 교실에서 <바벨> 이란 영화 속 두 개의 에피소드를 놓고 소통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아이를 잃고 멘붕이 된, 대화마저 단절된 미국인 부부가 모로코 여행을 하는데, 아내가 현지 아이들이 장난삼아 쏜 총을 맞고 사경을 헤맨다. 또 하나는 부부관계에서 무슨 일이라도 날 것 같아 전전긍긍하던 일본인 부부 이야기다. 아내는 끝내 자결하고 만다. 이들 부부 관계에서 막힌 숨통을 뚫어주는 것은 한 발의 총성(총알)이다. 피를 흘리고 나서야 실체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 사랑이고 소통인지…? 미국인 부부는 화해하고, 일본인 남편은 농아인 딸을 부둥켜안는다.

 

<마이 원 앤 온리> 란 영화 역시 소통 안 되는 부부를 조명한다. ‘나의 유일한 사람’이란 제목의 기대에 걸맞지 않게 영화는 부부 해체를 시도한 후 묻는다. “홀가분하세요?”

 

‘앤’(르네 젤 위거 분)은 뉴욕 최고의 재즈밴드 리더인 남편 ‘댄’(케빈 베이컨 분)덕분에 세상 어려운 줄 모르고 살아왔다. 어느 날 댄의 바람기가 발동한다. 곧 끝나겠지. 그러나 남편의 탈선은 그칠 줄을 모른다. 여자를 집에까지 데리고 온다.

 

앤은 고등학생인 두 아들을 데리고 가출을 단행한다. 먼저 ‘캐딜락’을 산다. “보스턴으로 갈 거야.” 운전을 맡은 둘째 아들 ‘조지’(로건레먼 분)가 말을 받는다. “내가 따라가는 이유는 딱 하나예요. 일주일 안에 돌아올 테니까.” 앤이 단호하게 말한다. “백미러는 보지 마라. 뒤에 뭐가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없다 치고 앞만 보고 달리렴.” 잔뜩 찌푸리고 운전하는 조지의 가방 틈으로 <호밀밭의 파수꾼> 이란 책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남편의 사랑이 완전히 식었다고 생각하는 아내, 아내가 철이 없다고 생각하는 남편, 이런 상황을 재미로 인식하는 큰아들 ‘로비’(마크렌달 분), 부모에게 실망한 조지. 결국 가족은 이렇게 갈라지고 있었다.

 

앤은 모텔과 여행자숙소를 전전하며 자신과 결혼해 줄 다른 남자를 찾는다. 빼어난 미모 덕분에 주변에 남자가 많이 몰린다. 술 마시고, 춤추고, 웃음을 팔고……. 보스턴, 피츠버그, 세인트루이스까지. 그러나 앤이 찾는 신랑감은 어디에도 없었다. 돈을 빌려달라는 남자, 으스대는 육군대령, 정말 사랑한다며 진심으로 고백하는 한 성공한 사업가는 알고 보니 정신 이상자였다.

 

“그 남자 사랑하긴 해요?”

 

남자를 만나고 들어올 때마다 조지가 애잔한 표정으로 묻는다. 대답하지 않는 앤. 어느 날 그녀는 교사죄로 유치장까지 가게 된다. 낯선 남자의 도움으로 출소하여 귀가하는 새벽시간, 밤을 하얗게 지새운 조지가 묻는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LA에 도착한다. 할리우드에서 엑스트라로 일하는 모자. 조지가 연기능력을 인정받아 캐스팅 되고 한숨 돌린다. 이때 댄이 불쑥 나타난다.

 

“이제 그만 할 거지? 그만 뉴욕으로 돌아가자.”

 

“ 잘 모르겠어.”

 

“ 아직 반도 안 보여줬는데….”

 

농담처럼 나눈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홀로 되돌아간 댄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다. “맘껏 울어.”

 

조지 등을 쓰다듬는 앤의 얼굴에서 만감이 교차한다. 장례식에 참석한 조지는 다시 학교에 가고 연기활동도 계속한다. 앤의 그늘진 얼굴이 디졸브되고 조지의 표정 없는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뒤에서 하모니카로 연주하는 <홍하의 골짜기. red river valley> 가 처량하게 울려 퍼진다. 조지의 독백이 이어진다.

 

“우리가 길에서 보낸 몇 달을 생각해 본다. 우릴 맡아줄 누군가를 찾아 떠돌아다닌 나날들. 결국 우리에겐 아무도 필요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린 우리 자체로 충분하니까.”

 

사는 방법이 서툰 사람들 이야기다. 가족치료 현장에서 쓰는 말로 ‘아빠 시험, 엄마 시험, 부부 시험’을 치러야 할 사람들이다. “너에게 최선이 무엇인지 알아보자.”라는 엄마의 말 뒤로 조지의 독백이 뒤따른다. “엄마는 우선순위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남편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게리 채프먼’은 <5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을 통해 말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 만나 결혼했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데는 또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무작정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