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흥미로운 전시를 만났다. 서울 동대문운동장에 들어선 디자인 플라자가 개관 1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다. ‘함께 36.5 디자인’이라 이름 붙여진 이 전시는 ‘공존’과 ‘공생’, ‘공진’을 주제로 디자인을 품어냈다.

 

‘달라서 아름답고, 함께 해서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화이부동의 장’을 내세운 전시회의 취지는 곳곳에서 빛났다. 감동과 깨우침으로 눈길을 끄는 디자인 작품이 그만큼 많았다는 증거다.

 

거기 ‘손으로 보는 졸업앨범’이 있었다. 국립서울맹아학교 학생들을 위한 졸업앨범이다. 학교를 졸업하면 누구나 갖게 되는 졸업앨범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앨범은 아이들의 사진을 3D 프린터로 제작한 것이다. 3D 프린터는 ‘2D 프린터가 활자나 그림을 인쇄하듯이 입력한 도면을 바탕으로 3차원의 입체 물품을 만들어내는 기계’다. 맹아학교 아이들은 졸업식에서 이 앨범을 선물 받았다. 입체물로 제작된 친구의 얼굴을 만져보며 아이들은 ‘내 친구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즐거워했단다.

 

낡고 볼품 없는 의자들이 놓인 공간도 거기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의자들’이다. 거개가 십년도 넘게 사용했던 이 의자들은 철도원, 부동산 중개인, 대장장이, 수제화 장인 등 주인의 직업과 일상을 그대로 안고 있다. 기획자의 말을 들어보니 이 의자의 주인들은 어떤 좋은 의자도 대신 할 수 없으니 전시가 끝나면 꼭 다시 가져오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만큼 의자들이 품고 있는 사연도 다양하다. 남대문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의 의자는 다리가 따로 없는 육면체의 나무 의자인데 그 안에 난로를 넣을 수 있도록 한쪽 면이 뚫려있다. 바깥에서 주로 장사를 해야 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직접 나무를 구해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전시장의 시작을 이끄는 성수동 구두골목에서 옮겨온 수백 개의 신발 형틀도 메시지가 강하다. 저마다 다른 형태와 크기의 형틀이 설치미술처럼 놓인 이 공간은 다름과 배려의 미덕을 생각하게 한다. 다름을 존중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디자인의 가치가 우리 사회를, 우리의 삶을 얼마나 향기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이 전시는 디자이너가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게 해준다. 일상의 모든 요소가 디자인으로 호흡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면 디자인의 가치와 의미는 더 새로워진다. 디자인은 더 이상 기술의 영역에서만 빛나지 않는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사람들 누구나가 디자이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