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중년 남성

나이 든 여성에게 반드시 필요한 네가지를 들라고 하면 돈, 건강, 친구, 딸을 꼽는다고 한다. 그러면 필요 없는 한가지는? 바로 남편이다. 왜 그럴까. 별로 도움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움은 커녕 삼시 세끼 밥에다 빨래까지 해 줘야 하고, 쉽게 삐치기까지 한다고 푸념한다. 밥 챙기는 게 그렇게도 싫을까. 이런 비유가 있다. 세끼 밥을 밖에서 해결하면 영식이, 한끼 먹으면 일식이, 두끼 먹으면 두식이. 그런데 세끼 꼭꼭 찾아먹으면 삼시쉐끼, 간식까지 챙겨먹으면 간나쉐끼로 변한다. 여필종부(女必從夫), 참 그리운 말이 됐다.

 

또 짐 덩어리 비유도 있다. 남편은 집에 두면 근심 덩어리, 데리고 나가면 짐 덩어리, 마주 앉으면 웬수 덩어리, 혼자 보내면 사고 덩어리. 젊을 땐 돈이라도 벌어왔지만 돈도 못 버는 은퇴 중년이 되면 안방의 쓰레기 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좀 더 늙으면 아침에 눈 떴다고 혼날지도 모른다.

 

꼴불견 은퇴 남도 있다. 갑(甲)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 이를테면 공무원, 권력기관 종사자, 대기업 임직원 출신 중에 지금도 현직인 냥 우쭐대는 이들이 있다. 평생 아쉬운 말을 해 본 적이 없고 고개 숙인 적도 없으니 이런 중년은 은퇴 후 소프트랜딩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사람일수록 자리에서 물러나면 문화적 충격이 크다.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있는데 지갑은 닫고 말만 많은 이들도 기피대상이다.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문득 은퇴 중년 남성의 존재에 생각이 미쳤다. 중년은 멋진 시기이다. 세월은 사람을 지혜롭게 하고, 인생지사 새옹지마의 깨달음도 준다. 또 나이 들수록 가정의 소중함도 절감한다. 그런데도 은퇴 중년 남성들이 가정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다. 우울증을 겪는 이도 여럿 보았다.

 

가정은 최고의 ‘사랑 충전소’이다. 괴에테도 말했다. “왕이건 농부건 가정에서 평화를 찾아낼 수 있는 자가 가장 행복한 인간이다.” 남편 기 죽게 하지 않는 것도 가정의 역할이다. 중년의 진정한 성공은 아내에게 사랑 받고 자식들에게 존경 받는 것이다. 삼시쉐끼, 짐 덩어리 취급하는 세태가 얄밉다.

 

“…한데 오늘에서야 이런 나도 중년이 되고 보니/ 세월의 무심함에 갑자기 웃음이 나오더라/…훠이 훨훨훨 떠나보자 떠나가 보자/ 우리 젊은 날의 꿈들이 있는 그 시절 그 곳으로”(박상민의 노래 ‘중년’)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