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사실 작은 국제대회 한 종목에 불과하지만 지역의 입장에서 보면 모처럼 국제대회를 유치했는데, 그 과정에서 국내 체육계의 원로가 직접 유치위원장을 맡아 나섰다는게 화제였다. 굵직한 국제대회를 유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 체육계에서 ‘마이더스의 손’으로 통하는 이연택 위원장을 지난 3일 종로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저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7 무주 세계태권도대회 유치위원장을 맡아 유치에 성공하면서 도민들의 관심이 커졌습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월드컵 유치나 대회 진행을 주도적으로 했던 사람으로서 특정 종목 유치위원장을 맡는것에 대해 사실 부담이 컸습니다. 체육계 인사들은 대부분 ‘무주 유치는 결코 쉽지않은 싸움이고, 잘해야 본전이다’며 유치위원장을 맡지 않았으면 하는 뜻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향인 전북이 어렵다는 말을 들으니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항상 침체돼 있던 전북이 뭔가 한번 해보려는 것에 고무된 것도 사실입니다. 프레젠테이션때 대회 보완 방향을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서 사람들 표정을 보니까 성공했구나 하는 감이 팍 왔습니다. 문제는 유치가 중요한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존경받는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갖춰야 합니다.”
-현재 새만금위원장도 맡고 계신데 사실 무주태권도원과 새만금은 물리적인 거리도 그렇고, 성격도 전혀 달라 보입니다.
“사실 크게보면 전북의 동쪽에는 태권도원이 있고 서쪽으로는 새만금이 있어요. 우리가 잘하면 전북의 양대 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동쪽은 태권도원을 중심으로 세계태권도 성지로 만들어가고, 서쪽은 새만금 사업을 통해 대중국 전진기지의 위상을 굳힐 수 있는 것입니다. 전혀 별개처럼 보이지만, 태권도 성지의 육성과 새만금 사업은 서로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보완 기능도 할 수 있다고나 할까요. 올림픽과 월드컵을 통해 대한민국이 도약한 것처럼, 전북이 이번 대회를 통해 한번 점프해야 합니다.”
-지역이 어려울때마다 유치위원장을 맡아 주시고 계십니다.
“프로야구 10구단 유치에 나선 사람으로서 실패의 경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전북 출신 30대 기업 하나도 없고, 컨소시엄조차 안된다고 해서 고민끝에 어렵게 찾아낸 것이 바로 전남광주와 연고가 있는 부영이었습니다. KT가 수원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공기업이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해서는 안된다’며 청와대에 탄원서까지 넣었습니다. 야당 의원 10명 남짓한 전북과 달리, 수원은 여야 의원이 무려 50여명에 달했고, 3선은 기본이었습니다. 이런 여건이었지만, 막판에 전북이 단합하고, 가열찬 투쟁력을 보였더라면 명분에서 앞섰기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배팅에 약한 부영의 소극적인 태도가 실패의 한 원인이었지만,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지도자나 도민들의 단합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계기였습니다.”
-전북은 무주 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개최했고, 그 여세를 몰아 동계올림픽까지 도전했던 일도 있습니다.
“무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통해 무주-전주 도로가 뚫리고, 전주에 빙상경기장이 생긴것은 하나의 성과라면 성과입니다. 하지만, 여건이 안되는 상태에서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 했던 것은 결과적으로 욕심이었습니다. 제가 대한체육회장으로 있을때 일부 정치인들은 무조건 전북으로 동계올림픽으로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의 경우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지만 동계올림픽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전북의 경우 각종 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데 당신이 대한체육회장이니 무조건 해내라고 닥달하는데 답답할 뿐이었습니다. 무조건 정치논리로 해서는 안됩니다. 철저하게 논리에 근거해서 설득하고, 열정을 보여야만 대회 유치도 가능한 것입니다. 앞으로 전북은 대구나 광주처럼 계속 도전해서 장기적으로 굵직한 대회를 유치해야 합니다. 동계올림픽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무주에 태권도원이 오게 된 계기가 됐어요. 동계올림픽은 잠시지만, 태권도원을 유치해 무주를 태권도의 성전으로 만들면 영원히 전북이 세계 태권도인의 고향이 될 수 있고, 결국 지역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봤습니다. 태권도원 후보지 몇곳이 검토될때 저는 무주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끝으로 도민들께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대학때 가인 김병로와 인연이 돼서 뵌적이 있는데 고향의 선배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영감을 얻은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엔 하숙집 하나 구하는데도 전라도에서 왔다고 하면 모두가 꺼리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를 보면서 역사의식, 애향의식이 커졌습니다. 앞으로 도민들이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강한 응집력을 가져야만 합니다. 단합하고 서로 돕고해서 잘 사는 전북, 밖에서 인정받는 전북을 만드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 [이연택 위원장은] 올림픽·월드컵 유치 '주역' 고향 위한 일 언제나 '앞장'
‘010-XXXX-2002’
이연택(79) 위원장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다.
전화 번호 끝자리 ‘2002’는 한일공동월드컵때 월드컵 조직위 공동위원장을 지냈던 그에게 2002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 총회에서 88올림픽이 결정되던 역사적인 순간, 유치 실무책임자로서 진한 눈물을 흘렸던 그가 20년후 다시 거둔 결실이 바로 2002 월드컵이기 때문이다.
조상대대로 고창 성내에서 오랫동안 터전을 잡고 생활해 왔기에 사람들은 그의 고향을 고창으로 알고있다.
하지만, 이연택 위원장이 실제 태어나고 10년 넘게 자란곳은 김제다.
부친 직장으로 인해 김제에서 태어난 그는 4학년까지 김제중앙초를 다니다, 정읍 동초를 졸업했다.
이후 전주북중, 전주고, 동국대 법대를 졸업했다.
7남매중 6번째인 그는 큰형(이길연 전 전북부지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큰형은 고창군수, 김제군수, 전주시장을 지냈으며 공직자의 표상이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공채를 통해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행정요원으로 공직을 시작, 30년 넘게 행정가로 활동했다.
또 한편으론 30년 넘게 체육인으로 활동했다.
대통령비서실 행정수석비서관, 총무처 장관,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노동부 장관, 2002 한일월드컵 조직위원회 공동조직위원장,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 제34대·제36대 대한체육회 회장, 재경전북도민회 회장, 인천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새만금위원장을 맡고있다.
이 위원장은 장·차관으로 있을때부터 고향 후배를 잘 챙기고, 고향을 위한 일이라면 좌고우면 하지않고 발벗고 나선 것으로 유명하다.
상대를 배려하는 소탈한 성품에, 풍부한 인맥을 바탕으로 현재 출향인의 원로격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